우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제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서 어떤 분이 했던 평가를 보면 그 또한 우리가 만든 하나의 허상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언행일치의 모범적인 사례의 성인입니다. 그는 주장과 행동을 철저하게 지켜내었죠.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제자 플라툰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것이 이데아라는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게 한 것이었고, 또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사상의 기반으로 실용적 주장으로 변화했습니다.
트럼프의 자극적인 말,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말. 그러나 그의 집권 당시 그가 행한 행위들은 사실은 미국 우선주의였습니다. 우린 그런 그의 정책에 힘겨운 이방인의 국가였죠. 동맹을 강조하고, 정의와 민주주의, 상식, 윤리를 드리밀며 그를 평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그는 과연 어떤 대통령이었을까요? 사실상 그의 말처럼 그는 극단적인 정치가는 아니었습니다. 나름 강성이던 그의 주장과 달리 합리적인 정책들을 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를 자극하고, 피아를 정확히 식별하여 대중이 좋아하는 단어를 내뱆음으로 인해 그는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하면서도 정권을 얻어내고 했던 것은 그 나름의 합리적 행동, 자국 우선주의 정책.
우리나라는 어떠했습니까? 물론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으며 이성적 판단을 한 다수였으나, 그 몇프로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비이성적 국가를 체험하고 있죠. 민주주의는 박살났고, 거의 왕정에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말하며, 주인의식 없이 언론이 던져준 정보와 주변인의 말을 통해 쉽게 평가합니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인간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언행일치를 좋아하면서도 달콤한 말에 더 잘 넘어가지요. 경험했어도 소용없습니다. 극한직업에 나오는 테드창처럼~. 또 속아서 탈탈 털리는 것이죠.
왜 일까요? 욕심입니다. 스스로 싸워내고, 땀흘리기보다 쉽게 얻으려는 욕심. 오늘날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민'이 주인된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죠.
무엇이 정의다. 맞다. 옳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이러한 세상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draft였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게 먼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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