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이라고 하죠. 나라 사랑을 넘어 뽕 맞은 듯하는 애국. 정말 뉴스를 안 보는데 어쩌다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오 세상에
이웃 일본은 이미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었습니다. 다른 건 놔두더라도 최소한 한국을 통해 문화의 발전을 이룬 일본이 받은 그 상을 아직 아무도 받지 못했던 것이죠.
거기에는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을 번역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형용사적 변이가 너무나 다양하죠. 파랑이라는 색깔 하나도, 푸르다, 푸르스름한, 파리하게 물들어 있는 등등으로 도무지 사전적으로 대입될 문장이 없는 신조어지만, 한국인들은 그 뉘앙스를 알 수 있는 (때때로는 일반 한국인도 모르는 첨 들어보는 것도 많죠) 그런 표현들을 과연 영어로 번역이 가능할까?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동시에 과연 어떤 번역가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그만큼 한국어가 널리 퍼지고, 이를 이해하는 외국인들이 나왔다는 이야기겠죠?. 혹은 그 반대이거나) 궁금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작품 뿐 아니라, 번역적으로도 큰 업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한강'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수상기념으로 채식 주의자를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구성 스토리보다, 이 책의 특징인 구성에 있어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1. 2016년 문학계의 노벨상인 맨부커상 수상으로 알려지다.
노벨상은 대한민국에게는 넘지 못할 벽과 같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1950년 전쟁 이후 최빈국이던 나라가 88년 올림픽을 열면서 세계에 조금씩 이름 알리고, '아시아의 용'이라는 이름으로 성장을 해가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여러 나라에서도 수상자가 있음에도 유독 한국인에게는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상 노벨상 수상은 국력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일단 강한 나라일수록 여러가지 경제적, 문화적 지원과 사회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쩌면 돈 없이도 가능한 것이 '문학상'이지 않겠습니까. 창의력 하나로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가능한 분야이지요.
그래서일까요. 2016년 '한강'작가가 '채식주의라'라는 책을 통해 맨부커상을 받았을때 국내 언론은 하나 같이 '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대리 만족적인 뉴스를 쏟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정말이지 한글은 우리 관점에서는 쉽지만 외국인의 관점에서 뜻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예술적 표현이 가능합니다. 지나칠 정도이며 심지어 창조적이죠. 그 수많은 문화적 배경과 언어적 뉘앙스를 모르면 도무지 어떻게 번역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이제 꿩 대신 닭 같은 기사가 아닌 진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녀의 출세작.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된 것 역시 바로 채식주의자라는 책 때문이니,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니겠죠?
2. 소설 잼병이
제가 이 책을 본 것은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독서에 있어서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기억력의 부재 때문인지 일단 인물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힘들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누구인지 가끔 혼돈이 오기도 합니다.
솔직히, 영화쪽을 더 좋아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굳이 소설로 된 스토리를 읽는 것이 불편하다고 할까? 그렇다고 아주 읽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퇴마록의 경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으며, 이문열의 삼국지도 다음 권을 찾아가며 보았습니다. 그러데 여기에는 약간의 개인의 성장기적 이유가 있습니다.
'군 복무 시절'이란 점입니다. 뭐 퇴마록은 거의 이등병 때 손을 대었다가 빠져들었고, 제대 후,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 볼만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게 긴 시리즈를 읽었던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가능하면 1권짜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여기에는 80년대 말 유행했던 '영웅문' 시리즈가 한 몫을 했습니다. 무협지의 대부 '김용'의 유명한 3 작품을 무단으로 국내에서 시리즈 물로 내놓은 책이죠.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지만, TV 광고까지 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의천도룡기'를 읽었죠. 그게 몇 부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굳이 찾아볼 의욕도 없네요). 아무튼 '사손', '장무기' 이렇게 딱 2명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그 당시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과 관계 때문에 도무지 이야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A는 이전에 나왔었던 누구라는 대목이 나오면... 다시 책을 앞으로 돌려서 기억을 더듬어야 했죠. 이런 제가 삼국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군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을 겁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재미는 있었지만, 아~주 유명한 몇몇 장수들을 제외하고는 그냥 무시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에서는 좀 잼병이입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그런 저에게 딱 맞는 1권짜리더군요.
3. 읽어봐~ 정말 딱 너 스타일일거야.
제 친구가 채식주의자를 추천해 주면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저의 취향이 뭐라고 해야 할까.. 특별할 것은 없지만 좀 음침한 듯하게 흘러가며 무거운 주제를 좋아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건진 모르겠네요. 아기공룡 둘리의 광팬이었는데.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아마 15번 이상은 보았을 겁니다. 그런 걸 좋아했었죠.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습니다만, 확실히 좀 특이스러운 취향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어느 회사를 다닐 때 문제의 채식주의자가 있는 거였습니다. 우연일까요? 친구의 추천을 들은 지 그리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거죠. 뭐 유명해지다 보니, 누군가 신청을 했을 법도 하죠.
일단 제가 싫어하는 여러 인물이 나오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무척 단순한 등장인물이 저로 하여금 어떤 거부감도 없이 읽어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미스터리 한 듯한 어떤 상황들.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이 절로 들더군요.
아마, 하루 아니면 이틀. 아무튼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정말이지 재미있게 보았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친구의 말처럼 정말 딱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4. 3개의 단편,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은 이 책 속에 담긴 첫 번째 단편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두 편의 단편이 더 있죠. 처음에는 단편이라는 느낌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으로 에피소드가 끝나는 것을 보고서야... '아, 단편이구나' 생각할 수 있었죠.
그런데 몽고반점을 읽다가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무 불꽃에서 이 분리된 3가지의 이야기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여자, 그래서 점점 말라가는 그녀, 여러 가지 해석을 할 부분들이 있겠지만 결국 어떠한 강박에 관한 이야기를 한 여자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끌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린 잡식이죠. 그러나 주인공은 어린 시절 '개'를 잡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개고기를 맛있게 먹었죠.
저에게도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집에 오는 없어졌습니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잡아서 가족들 몸보신시킨다고 이미 요리를 하셨다는 겁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억지로 먹었던 그 고기를 그 자리에서 토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고기 자체를 그리 잘 못 먹었습니다. 비단 그때의 기억 때문은 아닙니다만, 그런 제가 '보신탕'에 대해 가졌을 거부감은 상상 이상으로 컸습니다. 그럼에도 부득이 그 '보신탕'을 먹게 된 것은 오직 '사회생활' 때문입니다. 기억컨대 첫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장님이 점심으로 찾은 곳이 보신탕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초년생에게 선택권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 먹게 된 보신탕은 즐겁다거나 맛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구역질이나 구토를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만, 고기를 잘 먹질 못했습니다. 불고기와 돼지국밥, 생선 역시 몇 가지 종류에 한정될 만큼 소위 말해서 '입이 짧은' 편이었습니다.
5.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유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뭐, 좋습니다. 인간의 특징 중에 하나이죠.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간은 그냥 영장류의 한 부류입니다. 동물이죠. 동물에게는 각기의 식습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채식동물, 육식동물, 잡식동물 단순히 이렇게 3개로 분류 가능하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것이 꼭 규정된 것은 아닙니다. 채식 동물도 육식을 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광우병의 경우 소의 사료에 '소고기' 일부 포함시킨, 어떻게 보면 인간이 인육을 먹는 것과 같은 반인륜적(이게 소에게 적용될 단어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인해 생긴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식동물도 가끔 채식을 합니다. 뭐 일종의 약물 복용 같은 것이죠.
동물은 살아있다는 표현을 쓰지만, 식물에게는 이 단어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물 역시 아주 느리게 움직일 뿐 공포도 느끼고, 희열도 느낍니다. 이러한 것은 이미 오래전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죠. 무생물이 아닌 바에야 모든 것이 생물입니다. 즉 살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은 특별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 자연스러운 삶에 있어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하고, 너무 과잉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살이 있는 생명을 소중이 여긴다는 점에서 채식주의는 의미 있는 행동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사실상 채식주의라는 단어를 통해 살육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급기가 그녀는 나무가 되길 원합니다. 오직 태양의 힘만으로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존재. 나무는 동물로 분류되지 않고 식물로 분류되죠. 그리고 통상적으로 동물보다 수명이 깁니다. 때때로 우린 그런 나무를 신령으로 숭배하기도 하죠. 그러데 나무를 자르는 모습을 보며 우린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나요?
인간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자주 믿음으로 변화되고, 그건 현실로 변질되곤 합니다. 채식주의자 속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역설적이게도 그가 거부하는 동물에서 먹어도 되는 식물이 되길 바라죠.
정해진 답보다, 많은 질문과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척 단순한 소재와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몽고반점이라는 스토리적 환기를 통해 잠시 다른 관점으로 돌렸다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구조적인 훌륭함은 읽는 재미를 더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모든 이야기가 떠오르진 않습니다. 새삼 다시 그 책을 꺼내 들어야 할 이유도 느끼진 못합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한번 더 보고 싶긴 합니다. 정말 제 취향의 소설이었으니 말이죠.
그러나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그리 썩 책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도, 아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 길지도 않으며, 또한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적절한 묘사는 의문과 상상을 번갈아 가며 다음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글을 적었습니다.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우연히 뉴스를 통해 본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기뻤고요. 그래서 적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루고, 급조해서 적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이 책을 읽고 단 한 번이 글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구글 사진을 통해 단 2장의 사진으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
항상 긴글 읽어주시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채식주의자 꼭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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