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농업혁명, 그까이거 뭐 대충~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도 현재 24년이 흘렀으니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눈다면... 초반의 말기이며, 중반의 초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거론 되는 것은 A.I 혁명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자주 언급된 학자가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입니다. 학교 시험에도 자주 등장했던 이 책을 실제로 읽어보신 분은 또~ 그리 많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20년도 전에 읽어보게 되었으나 사실상 기억에 남는 것은 각각의 인류의 혁명이 에너지 주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명의 주기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는 것.
제3의 물결은 정보혁명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것은 마치 미래의 예언서와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시절에도 퍼스널 컴퓨터가 어느 정도는 대중화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허나 지금처럼 스마트 폰 하나를 들고 어디서나 검색이 가능하며, 영화를 볼 수 있던 것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었죠. 이젠 공상과학 속에서나 등장하던 A.I에 의한 인간의 공격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일부 학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니 농업혁명이란 것이 그리 크게 와닿지도 않고 교과과정에서 충분히 배웠으며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던 부분이죠.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류가 농사를 짓게 됨으로써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잉여 생산물을 통해 국가가 탄생되었다는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농업혁명은 굉장히 중요한 혁명이며,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등의 기반이 되는 것이며 지금도 그 이후 등장한 혁명들조차 농업혁명의 연속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식량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잉여식량이 주는 의미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공존 했었습니다. 그 둘은 신체 조건도 조금 달랐는데 네안데르탈인의 암컷이 호모 사피엔스의 수컷보다 더 힘이 강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만 보면 약육강식의 논리에 맞지가 앉죠.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지능적으로 부족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성대 쪽이 더 발전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즉 훨씬 의사소통이 좋았다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두 종족은 서로 교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에서 이미 그 답을 찾았죠. 꼭 두 종족만 보지 않아도, 인류는 자연사 적으로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살아남아 생태계의 제일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집단화를 이루는 생활 방식과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집단화되었고 그랬기에 보다 더 명확한 의사소통이 필요했을 겁니다.
잉여식량은 더 많은 집단을 만들어내고, 더 좋은 기술을 만들어 내는 핵심입니다.
수렵채집 시절, 인간은 사냥할 수 있을 때 사냥하고, 배불리 먹어야 했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저장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내일 사냥에 성공하리란 법도 없었을 테니깐요. 그러다 보면 주변에 식량이 고갈되겠지요? 결국 그렇게 또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어느 지역의 생명을 멸종을 시키기도 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멸종된 동물종도 많다고 합니다.)
이는 농경사회와 유목사회를 보아도 확연한 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3. 농경사회
먼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농경사회 이야기를 먼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의 수많은 나라들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러하죠. 그러니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간단하게 4 개절이 명확한 우리나라의 경우 봄철에는 모내기를 하고 여름철에는 잡초 뽑고 물고랑 메고, 가을에는 추수를 합니다. 이것을 '농번기'라고 하죠. 그럼 겨울에는 뭐 합니까? '농한기'라 하여 이때는 보통 쉬시거나, 여유 있으신 분들은 여행들도 다니고 그럽니다. 물론 쌀농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이 농한기에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고, 혹은 뭔가 만들기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과거 역사드라마에 보면 평민들이 새끼를 꼬아서 서민들의 신발인 '집신'도 만들고, 오늘날 가방 같은 '광주리'도 만들고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즉 잉여생산은 비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것이죠.
인구는 어땠을까요? 정착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를 낳고 또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은 또 노동력이 되다 보니 생산량이 더 늘어났을 겁니다.
처음에는 목적에 의해서 도구의 발달이 이루어졌겠으나, 점차 잉여생산물이 있으므로 해서 직접적인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유목민들의 침입을 막는 '군인'이 탄생했을 것이며, 농한기에 하던 창작 활동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들도 생겨났습니다. 덕분에 도구는 더욱 진보되었고, 문화, 예술, 정치까지 영역이 넓어졌을 것입니다.
처음은 몇 명의 무리가 정착을 통해 부족이 되고 국가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4. 유목사회
우리가 중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여러 유목민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중국은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도 쌓았죠. 기본적으로 유목 민족의 삶을 '몽고'를 통해서 영상으로 접합니다. 천막을 치고 목축을 하면서 살아가죠. 그렇게 그 지역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다시 이동을 합니다.
과거에 유목민족은 추수 때가 되면 농경사회로 건너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의 성향이 악해서가 아니라 식량이 부족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농사를 짓기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북쪽 오랑캐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는 것에도 제한을 두었습니다. 유목은 가족 단위로 가축을 데리고 늘 떠 돌아다니는 삶입니다. 그런 탓에 천막을 설치하는 기술과 가축을 효율적으로 키우고 번식을 하는 노하우를 발전시켰지만, 이런 이동에 있어서 걷지 못하는 어린아이는 짐이 되었던 것이죠. 하여 기본적으로 4~5살 터울을 두고 자녀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농경사회에 비해 인구를 많이 늘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기술에 대한 부분도 제한적이겠죠. 그러나 척박한 환경을 살아감으로 기본적으로 강한 민족성을 가지므로 이들이 단결하면 몽골제국과 같은 무서운 힘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역시 유목민이던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이들은 중국의 핵심인 '한족'과 잘 융화되어 사실상 중국역사상 몽골을 제외하고(이는 중국사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5. 수렵채집인
'나는 자연인이다'가 생각나시나요? 저만 그런가요? 하지만 정말로 수렵채집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바로 열대우림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원주민들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우린 왜 이런 분들을 원주민이라고 부를까요? 사실 그런 뜻은 아닌데도 원주민이라는 말에는 왠지 원시적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인상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인류사적으로 이동이 가장 적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농사를 짓기에도, 가축을 기르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은 수렵채집인으로 남아서 사냥을 하고, 적당한 야생과일들을 채집하여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려면 항상 동식물들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보통 열대우림 지역에 이런 생활 방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들 대다수가 '부족' 단위의 생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뭐 물론 그들이 사는 곳들도 도시화가 되어서 국가가 생겨났지만 과연 그런 소속감이 있을까요?
물론 이들의 사냥술과 사냥을 위한 도구들, 자연의 식물들을 구분하는 기술등은 인류와 공유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구의 한계, 식량의 한계로 그 이상의 발전을 하기에는 잉여식량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즉 농업혁명은 잉여식량의 발생으로 인해 인간에게 시간을 벌어다 주었고, 이 시간을 통해서 기술을 발전시켜 더 많은 생산물을 탄생시켰고, 개체수를 늘려갈 수 있었으며 이것이 선순환으로 작용하여 인류에게 문화라는 것을 탄생시켜 준 것이죠.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어떤 혁명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식량의 확보를 통한 잉여생산을 가능하게 한 농업이라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던 사건의 시작이었고, 현재에도 3가지 생활방식이 모두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각 문명의 발전의 정도를 충분히 확인 가능하실 겁니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일까?
그러나.. 과연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에 대해서는 손쉽게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농경사회라는 용어도 현대에서는 조금은 덜 발달한 사회라는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높은 빌딩들로 둘러싸인 대도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더 나은 삶이며,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오히려 뒤처진 이미지가 강하죠. 하물며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나 TV 속에서 가끔 방영되는 지구촌 소식으로 접할 때... 우리들 안 쪽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나요?
80,90년대를 떠올리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발전은 엄청납니다만, 그 시절보다 행복한 것 같진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조건이 물질만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어느 문명이 더 낫다 미개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무엇이 더 가치로운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하죠. 그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우리가 전혀 감사해하지 않는 것들에도 즐거이 웃으며 행복해하죠.
이 부분에서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비유를 드리자면 유년시절 '전자오락실'에서 그 꼬질꼬질한 도트그래픽의 단순한 슈팅 게임을 즐길 때의 쾌감을 지금은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더 좋은 그래픽과 이제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조차 되지 않을 만큼 실감 나는 게임들이 줄지어 나오지만 '슈퍼 마리오'를 클리어하고 '닌자용검전'을 1년 내내 붙잡으며 최종 보스를 깨기 위해 쏟아내던 열정이 더 이상 나오질 않습니다.
A.I가 연신 쏟아내는 놀라운 결과물들 역시 그 시절의 감흥을 넘어서진 못하죠. 인간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더 많이 행복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듯..
이번 시간에 대륙의 축 모양까지 적고 싶었으나, 다음 시간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총, 균, 쇠'를 기초로 저의 생각을 버물여 작성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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