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 (+ MEDIA)

전,란 후기 01. 믿음과 약속이 무너진 사회

리뷰파파 리파 2024. 10. 19. 10:13

앞서 00 편에서 영화의 전반적인 평가를 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심층적인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못보셨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입니다.

 

좀 깊은 이야기를 하려다보면, 결국 이야기 전체를 거론할 수 밖에 없기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시작하도록하겠습니다.

 
전,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평점
10.0 (2024.10.11 개봉)
감독
김상만
출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전배수, 조한철, 전진오, 강길우, 이민재, 홍서준, 최대훈, 황보름별

1. 진정 왕과 노비가 대동한가?

이 영화는 '정여림'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에서 먼저 시작을 합니다. 몇 줄의 설명과 함께 목에 칼을 꽂아 죽어가는 '정여림'이라는 인물을 보여주죠. 전체적으로 비중이 있진 않지만, 주제에 강렬한 바탕 생각을 형성시키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양반이면서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같이 무술을 배우고,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평등'이라는 것이 오늘 날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지만, 400년전 조선시대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만으로 자칫 죽을 수도있는 일이었던 것이죠.

궁이라는 글자로 지배의 개념을 설명하는 선조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세상에 여러 법들이 존재하는데, 항상 그 피해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기본원칙같은 것이 있죠. 그래야만 납득이 되니 말입니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건넜다고 해서 벌금 100만원을 물린다거나, 반려견을 죽였다고 해서 사형을 내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 죄질에 비해서 엄격하게 다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위조지폐의 경우죠. 요즘에야 사람을 여럿 죽이고도 사형은 커녕 20년 형을 내려지기도 하고, 설사 사형을 구형받아도 실질적인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위조지폐는 어떨까요?

 

법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형량에 대해서는 모르나, 꽤 중하게 처벌이 내려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중세시대에는 역모에 상응하는 극형을 받았었습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했는데 기껏 돈 몇개를 속여 만들었다는 것이 더 많은 재산적 피해를 입힌 이들보다 더 엄하게 다스려졌던 것은

'system'의 붕괴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더 깊이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 짧게 마무리 지으면, 결국 사회의 제도와 기강을 흔드는 일에 대해서 만큼은 그 피해의 정도를 떠나 엄하게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분제도는 조선의 사농공상이라는 틀 아래, 이에 속하지 못하는 노비는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죠.

 

그러니 정여림은 토벌의 대상이었으며, 이 영화 속 첫 장면은 바로 그 토벌장면을 조용히, 몇자의 글자로 배경을 설명하며 천천히 그들이 만든 '대동'이라는 조직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에 스스로 칼을 꽂아 자결한 정여림. 이 장면은 이후 나올 또 다른 장면의 스포일러이기도 합니다.

구렛나루가 뻐쳐있는 모습은 밉살스런 노인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출처: 네이버 영화)

선조 역을 맞은 차승원은 여지껏 수많은 매체에서 보여준 그 어떤 '선조'보다 치졸하고 시기심 많은 인물을 그려냈습니다. 단지 왕이라는 느낌보다 욕심 많은 늙은이의 이미지가 겹쳐보이죠. 살만큼 산 노인이 자기 목숨 살리겠다고 어린 아이를 죽이는 모습. 제가 느낀 선조는 딱 그러했습니다.

 

그는 죽은 정여림 만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아들까지 불러 국문을 하죠. 그리고 울먹이는 듯한 눈과 마치 자신은 나약하다는 뉘앙스의 추태를 부리며, 그래~ 너희 다 해먹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놓을 생각이 없는 추태를 부리죠. 그렇게 그는 묻습니다.

영상! 진정 왕과 노비가 대동한가?!

 

즉 평등한가에 대한 이 질문에 지금의 우리의 대답은 'Yes!!' 이죠. 자신의 곤룡포를 벗어서 병사에게 왕위에 앉아보라는 그의 모습은 거짓된 관용입니다. 왜 이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나와야 했을까? 2024년 과연 외국 자본과 유통망이 아니면 이 영화가 극장 스크린에 걸릴 수 있을까?

 

1592년 임진왜란 전,후의 이야기지만 왜 이토록 오늘날의 우리에 가슴을 후벼파면서 이 시대의 우리를 들썩 거리게 하는지, 진정 오늘날 사람들은 대동한가?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2. 누군가는 약속을 어겼고, 누군가는 지켜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믿지 않았다.

이 영화의 각본에 참여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신 분이라면 그 모든 비극이 끊어질 수 있는 각각의 선택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우연과 선택으로 인해 결국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 그렇게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어 모두에게 비극적 결말로 끝납니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출처 : 나무 위키)

어쩌면 종려(박정민 역)의 아버지가 무신으로써의 자긍심이 있는 자였다면, 그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을 소중히 생각 했을 겁니다. 태조 이성계 때부터 무사로 이름을 날린 집안의 내력과 그 근엄한 얼굴과 달리 그는 남자도, 무사의 자긍도 없는 자였습니다.

 

애시당초 청명(강동원 역)이 매받이를 하러 왔다는 자체가 모순 덩어리 입니다. 내 실수에 대한 처벌을 노비가 대신 받는다? 그게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이는 어찌보면 그의 아들 종려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반증입니다. 또한 노비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그에게도 최소한의 공감이란 것에 대한 개념은 있었다는 것이죠.

 

종려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저 아이는 얼마나 버틸려나?" 라는 대사 속에서 이 모순된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천명이 오기전까지 매 맞던 아이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다음날 시체가 되어 실려나갑니다. 우린 그 장면에서 노비들의 대사에 묻어 있는 분노를 느낍니다.

과연 누가 사람인가?

자식에게 직접 매질을 가하지 못하는 여리고 어리석음은 그들 모두에게 감추어진 모순과 실체를 느껴지게 합니다. 또한 그런 부모로 인해 종려는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며 '천한 것'을 연민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천영은 자기의 운명에 결코 순응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말을 들을 상인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는 양반집 도령님이 손수 다가와 먹을 것을 주며 손을 내밀지만, 냅다 담을 넘어 도망치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자식이 노비가 된 현실을 비관하며 목메달아 죽어 있습니다. 그리고 까마귀가 눈을 파 먹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죠. 그렇게 추노꾼에게 잡혀가는 천영.

 

그는 매 맞지 않기 위해 종려에게 무술 대련을 하였고, 둘의 대련 사실을 알고, 달라지는 아들을 보며 그제서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종려의 아비는 대리 매질이 아닌, 둘이 함께 훈련하기를 지시하죠.

너의 칼에는 분노가 없어!

 

전후사정이야 어찌되었던 종려는 그런 인물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착하기 쉽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래서 그는 매번 무과시험에 낙방하게 되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천영은 면천이라는 조건을 걸고 대리시험으로 장원급제를 약속합니다.

천성이 착한 이, 그러나 현실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들의 날선 비난에 오히려 뺨을 후려 갈기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는 말처럼 그는 천영이 대리시험을 치뤘다는 비밀을 지키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천영을 죽이려고 하죠.

 

그리고, 임진왜란이 터집니다. 장원급제한 종려는 선조의 호위 무사로 따라나선 사이, 피난을 준비하던 그의 집 안의 노비들은 반란을 도모합니다. 마치 그들의 '업장(카르마)'이 터져 나오듯 낫과 호미를 하나씩 집어들고 종려의 식솔들을 모두 죽이고 집을 불살라 버리죠.

 

천영이 창고에 갖혀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상황 종료!. 그러나 아직 종려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믿을 수가 없었죠. 이미 노비들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녀 역시 노비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는 길들이는 것이고 종은 부리는 것입니다

 

종려와 천영이 무술 수련을 통해 쌓아왔던 세월과 우정을 그녀는 싫어했고, 어찌 개와는 친구가 되면서 종과는 친구가 될수 없냐는 종려의 대답에 그녀는 저렇게 답을 하죠.

 

약속이 지켜졌다면 이 비극은 막을 수가 있었을 겁니다. 또는 종려가 우린 동무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또한 그토록 잔혹해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종려의 처가 남편의 동무인 천영을 믿었다면, 그토록 깊은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약속을 어겼고, 누군가는 약속을 지켰으며, 누군가는 아얘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극의 시작은 바로 이 모든 것의 조합을 통해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제부터는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저 보이는 것에 의지한 체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죠. 종려는 선조의 피난을 돕던 중 추노꾼을 통해 자신의 가족들의 죽음과 장원급제로 하사 받은 '청의의'와 '어사검'을 들고 말을 타고 탈출하던 청영을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모든게 천영의 짓이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결국 이 한가지 아젠다.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배신이 가져오는 것은 나라의 기틀 마저 흔들어 놓게 됩니다. 이 영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이 2가지 요소는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비록 수평적인 평등이 아닌 수직적인 평등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사회적인 계약에 의해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으나, 개인의 치졸함은 전체를 붕괴시켜버리죠.

천영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종려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늘은 전,란의 핵심되는 명제인 평등과 약속, 그리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럼 과연 나라는 무엇이며 적은 무엇인가, 무엇이 전쟁이며 무엇이 반란인가가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보에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