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이란 제목 사이에는 쉼표가 하나 들어가 있죠. 예전에도 이런 묘한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처음엔 몰랐죠. 그냥 버스 정류장인줄 알았는데.. 쉼표의 발견. 뭐 솔직히 영화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진 않지만,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것과 그래도 뭔가 울림은 있었다.그러면서도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사고방식... 그 시절에는 좀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이게 표현이 잘 안되네' 식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이 재법 많았습니다.
물론 평론가들은 그 속에서 해답을 찾고 해석을 하셨지만, 대중의 시선에서는 그러했습니다. 아역시절 부터 여전히 성인연기를 하고 있는 김민정 배우와 김태우 배우님의 풋풋한 한 시절의 영화죠
전,란의 쉼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있어보이려는 의도? 아니면 시간적인 공백이나 혹은 둘의 의미를 구분 짓는다는 의미?.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또 정확히 누군가 설명한다하더라도 각자만의 느낌은 다르게 전해질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정의를 해보았습니다.
3. 전쟁과 반란 그리고 지우고 싶은 두 글자.
전쟁이란 단어는 한자로 '싸울 전' 과 '다툴 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로 한자를 적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반란은 조금 다릅니다. 反亂(되돌릴 반, 어지러울 란)으로 적을 수도 있고, 叛亂(배반할 반, 어지러울 란)으로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통상적으로 전쟁을 백성의 입장에서 전란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반란인 건가? 反 vs 叛
먼저 싸움과 다툼의 뉘앙스를 명확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찌보면 같은 말 같지만, 싸움은 육체적인 경향이 훨씬 크고, 다툼은 경쟁의 뉘앙스가 더 강합니다. 즉 육체적 충돌 없이 별개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죠. 통상 전쟁이라는 단어는 '국가'와 같은 큰 무리간의 싸움을 지칭하죠. 그래서 싸움이 발생하고, 누가 승자인지를 다투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전'은 과정이며 '쟁'은 결과입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결과인 '쟁'은 빼버렸네요.
반란은 그럼 어떤 걸까요?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4개의 챕터로 나뉘어 스토리의 전개를 풀어가며, 그 각각에는 커다랗게 한자로 각각의 포인트를 알려줍니다.
4. 전, 쟁, 반, 란의 이야기
'전'은 면천은 커녕 겨우 종려의 부탁으로 왼손에 칼로 관통상을 입은 천영이 창고에 갖히고, 부자지간인 어부가 안개 속에서 일본군 함대가 바다에 나타나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쟁'은 도망치던 선조에게 백성들이 분노하며 덤벼들때 망설이다가, 추노꾼이 등장하여 천영이 자신의 식솔들을 죽였다고 오해한 이후,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종려, 반면 같은 시간 천영은 의병장 역활을 하며 침략자 일본군들을 도살하고, 그들의 최고 지휘관인 '비기'와 겨루는 끝에, 투구의 한쪽 뿔을 자르며 절벽아래 바다에 빠집니다.
한편 선조는 백성을 피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며 도착하자마자 나루터도, 타고온 배도, 심지어 인근의 인가도 모두 불태우라고 지시합니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 지시를 듣고 있는 종려의 얼굴에서 '쟁'이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반'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의병장으로 활동한 김자령 장군(진선규)과 천영이 '비기'와 그들의 잔당들을 붙잡아 직접 선조에게 전공을 인정받고 천영은 면천을 받겠다고 한양까지 올라가지만, 시~원 하게 뒤통수 맞고 역적으로 몰려 목이 잘린 체 저자거리에 걸리게 됩니다.
겨우 도망친 천영은 복수를 하고자 종려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수하들을 모두 죽이고 격렬한 대결 끝에 종려에게도 똑같은 손을 뚫는 칼에 상처를 남기죠. 분노에 휩싸여 목을 내리치려던 순간, 추노꾼이었던 자가 나타나자 그를 죽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역도로 만들었으니 소원데로 그리 되어 주마
그리고 효시된 장군과 동료들의 목을 찾아서 헤어진 의병 동료들에게 돌아가면서 '반'이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자 이때 등장하는 '반'은 되돌릴 반인 反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란'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 선조가 백성들이 굶어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경북궁을 재건해야만 왕의 권위가 선다며 집착을 하지만, 결국 나라 살림이 거덜난 판에 그게 가능할 리 없죠. 그리하여 왜적들이 숨겨둔 보물을 찾으라 보냈으며, 이 과정에서 심지어 왜병인 '비기'와 손을 잡죠
'역도'의 잔당 (사실상 의병)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비기'에게 벼슬과 한국식 이름까지 내리며 보물을 찾아오게 하고, 그렇게 의병을 죽이고 찾아낸 보물,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천영과 범동(김신록 역), 막내 (이민재 역).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자 찾아간 바닷가에서 '지랄염병'을 하고 있는 토벌꾼들을 봅니다.
애당초 선조의 목적은 '보물', 종려는 일본군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지만 오히려 총포가 터지며 쏘는 이들이 다치게 됩니다. 이미 손을 써둔 것이었죠. 애당초 다른 목적을 숨기고 서로 힘을 합친 것, 그렇게 서로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천영', '종려','비기' 3명이 각각 싸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종려와 천영의 오해가 풀리고, 힘을 합쳐 비기를 죽이지만, 종려도 죽게되지요. 그렇게 보물을 찾아 보내라 보낸 이들의 소식은 없고, 종려의 행방도 묘현해진 상태에서 한강에 배 한척이 상자를 실고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배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상자들만 실려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방에 대한 궁금한도 잠시, 보물에 대한 기대로 상자에 잠긴 자물쇠를 망치로 때려부수지만 나오는 것은 '소금'뿐
상자를 엎어라 명하니 그 속에서 이상한 물체들이 소금에 섞여 쏟아져 나옵니다. 선조는 그 물건 하나를 집어서 무엇인가 살피다가 화들짝 놀라죠. 그건 바로 사람의 '코'였습니다. 공포에 질린 선조의 모습과 함께 '란'이라는 글자가 마지막으로 등장합니다.
각 글자의 의미와 영화의 줄거리는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처럼 흐름을 나누어주는 역활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왜 '쟁'과 '반'은 빠졌을까요?
5. 사실은 민중의 손으로 되돌리고 싶은 反亂의 이야기
전,란은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과 끝만을 볼 수 있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역사책 한권을 보게 하는 느낌이 듭니다. 펼쳐드는 순간 그 속에는 숨겨진 쟁과 반의 이야기도 볼 수 있죠.
역사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큰 이벤트 위주로 역사를 기억하지만 그 속에는 수 많은 개개인들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제목 자체가 한권의 책의 구성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반란이라는 단어는 역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체계를 무너트린다는 느낌이죠. 그러나 이건 지배자들의 시각일 뿐입니다. 낮은 계급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은 언제나 '亂' 이었을 겁니다.
천영은 본래 양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빚을 갚지 못해 그의 어미가 노비로 팔려가게 되었고, 어미와 아이는 본래 한 몸이니 그 아이 역시 노비가 되는 것이 옳은 이치라는 '현재의 시각에서의 괴변'으로 노비가 됩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반란은 배신이 아닌 세상을 제대로 되돌리고 싶은 열망의 몸부림이 맞습니다. 그리고 문득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비추어 보게 됩니다.
6. '지배자'의 모습으로 보는 '민주주의'
이 영화 속 천영은 자기의 힘으로 얻어 낸 무과장원 급제의 상징물인 '청청의'를 입고,'어사도'를 들고 침략자인 왜적과 싸웁니다. 반면 종려는 붉은 색 관복을 입고 백성을 향해 칼을 겨눕니다. 너무나 선명하게 색깔을 대비를 통해 캘릭터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죠.
놀랍게도 태극기가 떠오릅니다. 비록 종려는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백성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의병장을 모함하면서까지 천영에게 복수를 하려하지만 그 또한 애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천영 역시 자신이 맞지 않기 위해 종려에게 무술을 가르쳤고 같이 성장하며, 심지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친구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지만 그의 아내가 홀로 남겨져 있을 때 구하려고 손을 내밉니다.
하나는 그저 일반 시민이며, 또 한명은 국가가 되어버린(군인, 또는 경찰, 공무원등) 시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고 믿음 대신 적의를 품으며 싸우게 되죠.
청주목사라는 인물은 왜군의 편에서서 변발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모두 구걸을 할 때, 기생을 불러 대낮에 잔치를 벌리죠. 이를 본 의병들은 오늘날 '친일 했던 이들은 잘 살고, 독립 운동을 했던 이들은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대사를 내뱆습니다.
그리고 의견이 갈리죠. 민족의 반역자를 죽이자는 쪽과 그 일은 나라에 맡기고 우린 우리의 역활을 하면 된다는 쪽. 그렇게 양반부터 천민까지 함께했던 이들은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왕'이라는 지배자에게 오직 기댄 '김자령 장군'은 끝내 스스로가 틀렸었다는 말과 함께 목이 잘렸고, 그토록 수많은 배신을 경험했으며, 온갖 핑계로 공을 세워도 면천을 해주지 않던 것을 알았으면서도 끝끝내 마지막 희망, 그래도 '왕'은 약속을 지킬거라 믿었던 천영 역시,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전,란은 결국 지배자란 존재가 어떤 인간들인지를 낱낱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희망을 걸면 어떻게 되는지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그런 지배자의 힘이 되어주는 이들의 삶인 종려를 통해서도 그 과정과 그 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죠.
결국 백성의 무서움을 모르는 지배자들은 인간이라 부를만 한가? 사람이라 칭할만 한가? 그런 자들에게 아첨하며 붙어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
물론 그 백성들 역시도 이익과 신념이란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분열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뭐가 중요한지를 영화는 말하고 있죠.
민주주의 사회.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이 있음에도 과연 지금의 시대에 국민이 주인인가요? 아니면 선조와 청주목사와 종려의 아버지 같은 지배자들이 세상의 주인인가요?
어쩌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전란에 휩싸이며, 결국 돌아려면 다시 한번 난리를 겪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 모두 정신차리고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써 권력을 이양한 그들을 향해 항상 감시하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메세지.
지배당하지 말고, 스스로 지배자가 되라는 것 아닐까요?
그저 흘러가는데로 가면, 항상 습관은 나쁘게 듭니다. 인간이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게 본성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60일 동안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쁜 습관을 들이는 것은 딱 14일 정도면 충분하죠.
세상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1987이란 영화에서 우리는 얼마나 힘들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작되었는지 (물론 그 이후도 문민정부가 나오기까지는 더 시간이 걸렸지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 촛불 혁명을 통해 또 한번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었죠.
그러나 또 잊어버렸습니다. TV속 언론에, 선동질에, 유튜버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 확인, 체험들보다 그런 뉴스와 정보들에 오직 판단의 근거를 삼고 있습니다.
종려라는 인물은 선한 이입니다. 최소한 약속을 지켜낸 자입니다. 천영은 반골 기질입니다. 추노꾼에게 잡혀 종려에게 차라리 죽이라고 하죠.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모든 식솔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종려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압니다. 실제 천영은 종려의 아내를 구하려 했으나, 그녀 스스로 불길 속에 들어가 죽었습니다.
천영 역시 그런 반골기질을 가졌지만, 진짜 적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죠. 종려 역시 기득권이었지만, 자기 답게 살기보다 강요된 삶에 기대었고, 결국 스스로도 괴물이 되죠.
이 영화는 무척 상업적이지만, 강렬한 메세지를 시민들의 마음에 아려세겨 놓지 않을까? 문득 그런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숨겨진 해석을 떠나 정말 재미있으며, 강동원이 이토록 멋질 수가 있구나를 이번에야 깨달케 했던 영화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음악!. 정말 끝내줍니다. 국악과 롹, 엠비넌트적인 요소까지 합처져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으며, 어쩌다 보게 된다면, 중간에 끊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나름의 해석을 했지만, 이외에도 마지막 장면의 연출에서도 크게 와닿는 점이 있습니다. 뭐 그리 어렵지 않게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전달될 부분이라 언급치 않겠습니다. 그게 또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메세지 전달을 베베 꼬지 않고, 적날하게 보여줍니다.
이로써 전,란에 대한 저 나름의 모든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보에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려요~.
10월 18일자 네이버 뉴스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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