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우리 밖으로 (나의 독립 답사문)

우리 밖으로 01. 두려움

리뷰파파 리파 2024. 8. 24. 10:45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 만들고, 글을 적어 봅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조금 해 본 적은 있지만, 무척 낯설고 사막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적는 것이 그리 매끄럽지 않을 만큼 머리는 굳어 있고, 삶은 사실 많이 지쳐있던 상태에서.. 그나마 조금은 벗어나 있는 상태입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당연하게씨만, 또 어떤 누군가...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것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무척이나 큽니다. 그래서 이 글은 그런 나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하며, 누군가 읽히게 될 당신을 그저 한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는 믿음으로 적어 봅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저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오직 그 이름만을 남겨두고 어떠한 신앙생활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종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가톨릭 신자' 입니다라고 답합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의 범주에 또 하나 '개신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뿌리는 같으나 그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또 여러 갈래의 종파가 나뉘고, 그런 속에서 소위 말해 사이비 교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타인의 삶을 착취하는 모습들도 우린 듣고 있습니다.

 

아! 오해는 마십시요. 저는 지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믿는 신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쯤에서 어떤 분은 "왜 당신은 그럼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말한다면,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뭔가 기댈 만한 곳이 있었으면 하기에 '신'이란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는 쪽이 낫다는 것과 살아온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저 나름대로 힘들었던 시절을 한 수녀님의 도움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제대로 가톨릭 신자로 살았던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20년 가까이 지났기에 무교라고 해도 무방할지 모르지만, 저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도 믿습니다. 그뿐 일 가요? 법치주의, 사회진화론, 양자역학등 수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죠.

 

여러분은 각자 어떤 믿음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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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음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문화와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문명을 창조했습니다. 이것은 그저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나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스스로 믿는 데로 행하고 계십니까?

 

아마도, 아마도 말입니다. 저는 그렇지 못한 분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99.99%가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진짜 믿는 것, 두려움

 

아마도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믿음'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을 발명해 내었고, 그것이 곧 '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아닙니다. 아마 생명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능일 것입니다. 위험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감정.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믿음'으로 작용합니다. 피해야 하는 것, 벗어나야 하는 것,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는 것.

 

단순히 회피라는 선택을 위해 생겨난 그것은 생명의 진화를 통해 이름을 갖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실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오히려 '신'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으로 탄생했으며 그 존재를 믿고 따라야 위험이나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원초적인 시절부터 가져온 진짜 믿는 것은 오히려 두려움 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뭐,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르시겠지만, 이 두려움을 '생존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면 어떨까요? 훨씬 더 납득이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결국 태어난 것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러다가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죠. 너무나도 명확하고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 과정은 그리 간단치 많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삶인 것 같습니다.

 

울타리 속에서

"절대 그 선을 넘으면 안된다!"

이거 너무 식상하다 싶을 만큼 많이 들은 이야기 들이시죠? 오컬트물 같은 공포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대사이며, 스릴러물에도 가끔 등장하는 거 같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어떤가요? 조금 다르게들은 표현하지만 우린 어떤 '선'을 넘으면 위험해지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울타리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안전을 의미합니다. 나를 가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외부로부터 나를 공격하는 것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지금 우리가 가축이라고 부르며 울타리 속에 가둔 존재들은 모두 한 때는 야생의 존재였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에만 해도 72종의 가축 후보종이 있었고, 시도를 했지만 겨우 13종에 불과합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18% 센트입니다. 아프리카는 어떨까요? 51종이 후보종이 었지만 단 한 종도 가축화 되지 못했습니다. 0%라는 것이죠.

 

우리 인간은 어떤가요?

 

700만 년 전 인류라고 불리는 진화된 존재가 등장한 이후 오랫동안 야생의 삶을 살아왔으나, 조금씩 조금씩 사회를 조직하고 울타리를 만드는 쪽으로 발전을 해 왔습니다.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울타리는 더 거대하고 강해졌죠. '부르주아'라는 말이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며 오늘날에는 부유한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렇기에 울타리라는 것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안전함'을 상징하는 믿음입니다. 누구나 그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길 원하죠. 더 나아가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깥세상이란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동경보다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밖으로

우리라는 울타리 속, 우리라는 소속감 속... 그게 뭐든 우리 밖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야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홀로 저 넓은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자유라는 부푼 기대보다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신'을 믿습니다만, 그것은 결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반대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아닙니다. 그저 이 세상 모든 돌아가는 원리가 '신'이라고 믿습니다. 인간 위주의 그 어떤 인격화된 존재가 아닌 '자연' 그 자체 안에 존재하는 어떤 시스템 같은 것.

 

지금 저는 우리 속이 아닌 밖에 있습니다. 무엇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며... 나를 지켜줄 우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을 믿습니다. 달도 차면 기울고, 더운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오고, 태어나면 죽게 된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고, 그 저녁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온다. 이 세상 모든 원리가 '신'이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