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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0 화 0620 공화정 vs 반공화정, 파레토의 법칙과 임영웅

리뷰파파 리파 2024. 12. 10. 07:29

파레토의 법칙을 들어보신 분들, 아마 많으실 겁니다. 마치 2대8 가르마와 같습니다. 전체 구성원의 20퍼센트가 그 조직의 사실적인 핵심 인물이며 나머지 80퍼센트는 유명무실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설명을 하면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니 더 현실감 있게 말씀드리면 10명중 2명만 열심히 성과를 내며 일하고, 나머지 8명은 그냥 열심히 일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다음 실험입니다. 이러한 파레토의 법칙은 전방위적인 조직을 이루는 모든 자연계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난 것으로 개미 사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뛰어난 20퍼센트를 별도로 조직화 하면 최고의 효율과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집단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그 안에서 다시 2대 8의 경향으로 무리가 나뉘더라는 겁니다. 반대로 80퍼센트를 분리시켜 실험을 하니 그 역시도 그렇게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죠.

 

이는 신의 법칙이라기 보다는 조직이 가지는 어떤 경향성에 대한 시사점을 낳습니다. 즉 어떤 상태이든 그 안에는 20퍼센트의 부지런하거나 유능하거나 헌신적인 존재가 있으며 80퍼센트의 잉여조직이 발생한 다는 것이죠.

 

이것은 한편으로는 20퍼센트에 대한 동인(動因)을 위한 적절한 보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80퍼센트의 비효율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존재가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엘리트 주의, 초인정치, 우성학 그리고 민주주의. 사실상 이 모든 사회시스템에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파레토의 법칙과 같이 80퍼센트라는 비효율적인 존재의 기초가 있어야 20퍼센트의 효율적 구조가 만들어진 다는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공화정과 반공화정 세력이 대립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파레토의 법칙은 역으로도 그 현상을 나타냅니다. 현재 여론 조사를 하면 수치의 차이야 어찌되었든 사실상 80퍼센트의 국민은 공화정을 지지하고, 20퍼센트는 반공화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공화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반공화정을 거론하는 이들, 쿠테타를 정당화하고, 독재를 지지하며, 윤석렬 내란 수괴의 정치적 지탱점이 되는 그들은 그들 나름데로 정의와 명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공화정의 자유로움이 결국 그들에게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다는 역설을 잘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공산당이 처음 만들어 질때는 80퍼센트의 피지배층 세력이 20퍼센트의 지주층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80퍼센트 속에서도 다시 20퍼센트 정도의 혁명을 실행하는 이들에 의해 사회는 전복을 맞이하였고, 그 명분이 다시 전체 80퍼센트의 지지속에 이제 20퍼센트는 소수가 되었으며 자연계의 약육강식처럼 큰 무리에 의해 적은 무리는 정복되었죠.

 

그렇게 생산시설을 공유한다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보다 더 나아간 공산주의가 탄생했으며, 한때 지구의 절반이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알듯, 다시 그 안에서 20퍼센트의 지배층이 생겼고 80퍼센트의 피지배층이 발생했습니다.

 

세상은 기묘하게 파레토의 법칙으로 정리가 되며, 인간의 집단 속에는 반드시 배신자와 똘아이가 있고, 또 뛰어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80퍼센트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하지만 역으로 그 80퍼센트의 잉여자원이 있어야만 20퍼센트의 여유와 사색, 실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집단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이 매커니즘 속에, 그럼 개인에게 묻고 싶은 것은 각자 자기의 나름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 스스로 가진 소신데로 인생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하며, 인과가 분명한 안정적인 사회에서 가능한 일임을 깨우치셔야 할 겁니다. 

 

어제 뉴스에 가수 임영웅이 탄핵결의로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자신의 반려견과 익살스런 사진을 올렸고, 이것에 열받은 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DM을 보내자, 자기가 왜 그런것에 신경써야하며, 자신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 다수의 국민의 감정을 건드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론은 반대적 입장도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자유이니 임영웅을 욕할 필요는 없다는 쪽도 상당히 많아 보였습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다 정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임영웅이 상당히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 그런 삶을 누리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운이 좋았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공화정이라는 사회 민주주의의 기반을 통한 것이며, 그 민주주의는 놀랍게도 '나는 중립입니다'라며 방관한 이들이 아닌, 바보처럼 나서서 권력에 의해 싸우고 피흘리며 고통 받은 이들로 인해 만들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예의와 눈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다. 인터넷 카페등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아얘 금지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 역시 위정자들의 의도데로 움직이는 것일 겁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야 자기들 마음데로 사회를 조물닥 거릴 수가 있습니다..

 

사실 정치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의 기반입니다. 삶의 파레토의 법칙과 같은 것이죠. 20퍼센트의 현재의 권리는 80퍼센트의 투쟁과 감시 속에 이루어진 지난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라고 말하는 입장도 맞지만, 그 자유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고민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자유의 근간을 침혜받을 수도 있는, 여전히 그 위협아래 놓여있습니다. 윤석렬이라는 광기어린 인간을 여전히 10퍼센트 정도가 지지하고 있으며, 그는 사실상 여전히 모든 권력의 핵심입니다.

 

정당성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윤석렬의 방식이라면, 그저 다수의 국민이 좀비처럼 달려들어 그들을 뜯어버리고 찢어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닌 신의 방식으로 풀어가야만이 미래는 초원의 방식이 아닌 문명의 방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기에 그러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분이 이 말이 참 와닿았습니다. 기울어진 비탈길에서 중립기어를 놓고 있다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과 같다. 중립을 논하고 침묵하는 사람들, 혹은 독재를 지향하는 이들은 그들이 어디서 살아가는지 잘 보셔야 할 것입니다. 땅위에서 살아가는 그대들의 그 땅의 견고함은 무엇을 기초로 하는 것인지.

 

공산주의 사회에서 고위 당원이던 이들이 권력에 약간의 불만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처단되는 사례들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사회가 민주사회이며, 공화정 사회이기에 그대들의 중립도, 심지어는 독재에 대한 지지를 이야기 하는 것에도 온전히 목소리를 내고, 멈칫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약육강식과 시장경제, 보이지 않는 손등을 이야기하며 세상은 알아서 흘러갈 것이라 말하는 분들은 사실상 그것이 인간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인간은 선량하다는 전재아래 문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힘의 논리로 싸우는 순간, 어떠한 강자도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늙고 약해지며, 그 순간 누구라도 칼 한자루 쥐고 힘의 논리로 약한 존재는 강한자에게 먹힐 겁니다. 어떤 세상일까요? 아수라와 아귀의 세상인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이지요.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화정과 반공화정의 대립 상태입니다. 어떤 목소리든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다수의 국민이 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소한 거리에 나서서 함께하지 않더라도 맘 속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맘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구글 검색 캡처

임영웅 가수님. 당신이 공화정 사회가 아닌 북한에 있다면 현재와 같은 부와 인기, 그리고 그 어렵던 시절에서 현재와 같은 위치로 올라설 기회가 있었을까요?

 

이번 친위쿠테타가 운이 좋아 피를 흘리지 않았을뿐, 현 상태에서 거리로 나서는 이들은 언제라도 미친 세력들에 의해 피를 흘리고 죽을 수 있는 위험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설마하던 일들이 정말 많았었죠.

 

용기는 바라지도 않지만, 잠시 스스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좋으나, 그 자유를 위해 나서는 이들의 '감정'과 '마음'을 생각하는 정도의 상식과 도덕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이코 패스가 달리 사이코 패스가 아닙니다. 정치적 중립? 나는 정치랑 상관없어? 그러나 당신이 디디고 있는 그 땅바닥은 정치체제 아래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립한다는 점.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사회라는 틀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플라톤의 초인 정치, 즉 독재자의 마음이 한 없이 공화주의자인 제 마음 속에 가끔 피어오릅니다. 누군가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에 살면서 자신이 어떤 사회에 살아가는지도 모른체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들을 모두 골라서 바다에서 살아가도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우적 거리고, 숨이 차는 그것을 경험해야만 그들은 땅의 위대함, 육지의 위대함을 알것 같기 때문이죠. 그러나 압니다. 이런 것이 결국 모든 독재의 정당성의 기반인 것을.

 

그러나 이 자유를 위한 투쟁속에서, 중립기어를 놓고 계신 많은 분들이 결국 또 다른 독재자를 꿈꾸는 누군가의 명분을 쌓아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중립이 결국, 독재를 지지하는 인과로 돌아와서 언제 어떻게, 그들의 평안한 삶을 침혜할지 모르죠.

 

그땐 아마, 저는 그 독재자를 지지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가 말하는 육도윤회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사슬을 끊어야만 하는 것이죠. 알지만, 참 쉽지 않네요. 그러하기에 여전히 윤석렬을 지지하는 10퍼센트와 정치에 무관심한척 쿨한척 하시는 분들을 보며 묘한 감정이 생기는게 사실입니다.

 

임영웅씨의 자유로운 행동에 대해서 한가지 말한다면, 속담에 눈치가 있어야 절에 가서도 새우젖을 먹는다는 말이 있죠. 눈치란것을 좀 보고 사시길 바랍니다. 힘들었던 시절 다 잊으시고, 지금 이루신 것들 당연하다 생각되는 단계로 가셨나본데... 지금 윤석렬이하 그들도 대통령되고 승승장구할때, 얼마나 자신은 능력있고, 운이 좋다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돌아와서 이제 보니, 그 모든 운이 결국은 재난이 되어버렸네요. 특히 이상민, 이태원 사건때 물러낫더라면 내란공모자가 되었을까요?

 

새옹지마가 주는 메세지는 불행할때 좌절하지 말라는 것도 있지만, 잘 나갈때 겸손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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