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일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도서관에서도 글을 적다보면 급격하게 피로도가 올라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영어 공부였습니다. 일단 시작만 했다하면 저의 피로 수치는 2에서 8까지 증가했고, 신체적 반응 즉, 하품, 눈물이 난다거나 하는 일들 때문에 애당초 매일 5장씩, 10일이면 볼 수 있다고 세운 계획은 5일까지 유지, 3일동안 방치해 두었습니다.
가장 힘든일 부터 하자라는 나름의 원칙으로 여러 일중 우서 배치했지만, 써 오던 주제의 글들, 때때로는 시의성이란 것이 있는 주제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고, 이러다간 책을 다 보지도 못하겠다 싶어.. 방법을 좀 바꾸었습니다.
영작 책입니다. 크기도 커서 가지고 다니는 것도 사실 좀 물리적 부담도 있었고, 일단은 영작은 하지 말고, 각 unit 별로 핵심 내용과 예제만 적자. 그리고 이후 영작을 하자. 그리하여 어찌어찌 그저께 책을 마무리하고 도서관에 반납을 했습니다.
이 것이 그 책을 제가 어설프게라도 1독을 한(사실상 예제 문제는 거른체) 기록입니다. 시간도 꽤 많이 걸렸죠. 아무튼 영어라는거 꼭 해야 한는 생각도 있는데, 왠지 자꾸만 배우고 싶습니다. 학창시절에도 못했을 뿐, 잘하고는 싶었던.. 영어.
해야할 것들이 참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 아직 쏟아 내지 못한 배움에 대한 흔적과 그걸을 다시 복제하면서 스스로 학습해야 할 몫들
그 와중에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고, 알고 싶은게 너무 많다. 신난다. 그리고 목표한 7독을 모두 완성 할 것이라는 것도 내 나름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 뉴스가 재미있습니다. 왜냐면 대중의 우매함에 대한 실망에서 뭔가 조금씩 임계점에 도달하는 징후들이 보여서죠.
우매한 대중은 어떤 임계점이 되면 집단 지성으로 바뀌곤 하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베어 나옵니다. 제 생활에서 제 목소리에서.
한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미워하는 저 자신도 바보같았고, 그런 그들이 저보다 더 잘 살고, 더 인간 사회에서 나은 인생, 아니 비교도 되지 않을 높으신 분이란 것들이 참 용납되기 어려웠으며, 우리 나라 사람중 절반 이상이 그런 이들을 지도자로 뽑은 것에, 사람이 사람으로써의 과연 이성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끔 아내에게 히틀러가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그의 신념이 옳은 것은 아니었으나, 만약 제가 지금 그런 권력이 주어진다면, 저는 아마도 일제시대때 민족을 배반한 세력, 그들의 목소리가 된 세력들까지 찾아내서 죽음으로 갚도록 할 것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그들이 누린 삶에 서려있는 피의 갚을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더 속내를 비춘다면, 저는 이번 정부를 세운데 기여한 이들, 아니 최소한 그것은 언론의 조작과 선동의 탓이라고 하더라도 아직도 그들에게 한톨의 힘을 보태는 이들, 뻔뻔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이들, '호모'로써 존재하는 유인원의 동물과 '사피엔스'로써의 이성을 가진 이들을 최소한 구분하는 인종청소를 할 지도 모릅니다.
한때는 그런 이들이 제 주변에 말은 하지 않지만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내가 저런 이들과 말을 섞고 대화를 하고 밥을 먹는다고?
지옥이죠. 그런 덕분일까요. 제가 4월에 심리적인 문제를 얻을 때 제 안에 있는 신과 잠시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알려주시더군요. 너의 그 증오가 지금의 문제의 시작이라고,
그래서 저는 그 날부터 뉴스를 끊었습니다. 무려 불금쇼부터 즐겨듣던 매불쇼를 끊었고, 제가 즐겨 듣던 경제 뉴스도 끊었고, 그야 말로 세상이 모든 소식들을 다 끊었습니다. 망하던 말든, 내 알바아니며, 내 삶조차도 버거우니... 내려놓았죠.
저는 다시 매불쇼를 듣지만, 정치 부분은 걸렀습니다. 답도 없고, 매번 정의만 외치지만, 누가 그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누가 그 옳은 목소리에 나아가 싸우는가? 1987의 주인공 정종철, 이한열 열사도 이 나라 민주주의에 도화선이 되었을 망정, 그들의 개인의 삶에 있어서 과연 행복했던가?
나는 그런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처자식 간수하다가 죽을 때 되면 죽는게 목표였던 그런 사람일 뿐이니 말입니다.
한번은 지금의 우리 대통령과 우리의 대대통령을 상상으로 안아주는 일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에 오래전, 미투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서울대의 한 여교수께서 남자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하셨고, 당시로써는 그런 일을 당했다는 말을 하기도 힘든 시절, 용기를 내어 세상에 알렸습니다.
결과는 최근의 미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녀는 학계에서 매장당했고, 오히려 니년이 꼬리를 쳤겠지라는 말을 들으며 한국을 떠나야 했었습니다.
인도 전문가인 강성용 교수께서 그녀를 미국에서 만났는데, 명상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셨답니다. 이야기 도중, 그 시절의 이야기가 나왔고, 그 분께서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답니다.
인도라는 나라가 대단하다고 느낀것은 바로 그런 방편들이 있다는 건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가장 불쌍한 사람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떠오를 겁니다.
그 사람을 아주 선명하게 이미지로 떠올릴때까지 계속 떠올립니다. (이걸 해보신다면 어떤 대상을 순간은 떠올려도 고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선명한 이미지를 얻게되면, 그 다음으로 불쌍한 사람을 떠올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 불쌍한 사람을 떠올리다보면 가장 마지막에 누가 떠오르겠습니까?
바로 자기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꼴찌로 불쌍한 사람이 되겠지요. 그분은 그 마지막 불쌍한 사람을 떠올리자, 펑펑 울며 용서라는게 되더라는 겁니다.
정말 용서했을거라는 믿음이 들만큼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행법이지요. 그와 더불어 부처 역시 자신의 첫 제자인 5명의 과거 동문들에게 처음에 멸시를 당하면서도 그가 깨달은 이야기를 한번 들어나 봐봐 해서 말한뒤, 가장 현명한 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었고, 또 한 분이 붓다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3명의 제자를 얻었으나 나머지 2명은 끝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하니 당혹함을 느낀 것이죠. 스스로 수행할 때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 정도면 성취해야 하는 것인데, 개개인 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부처가 놀라운 것은,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에게 맞춰서 그들의 눈높이로 그들의 목소리로 깨달음으로 가는 반야의 가르침을 행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호오포노포노를 좋아하지만 굿이 아우아쿠마, 우니히피리라는 용어를 쓰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학창시절 배운 의식, 무의식, 초의식이면 되는 것이죠.
불교 좀 안다는 분들은 아뢰아식이니 어쩌니... 지적 자랑을 하고 싶은 일종의 인정욕구의 반증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저에게 당신은 무의식에서는 인정욕구가 심합니다라고 말하면, 이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부처가 처음 깨달음을 얻고 길을 가다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른 힌두 수행자였는데, 그가 보기에도 부처는 뭔가 아우라가 다름을 느꼈답니다. 그래서 부처에게 누가 스승이며, 어떤 수행을 하냐고 물었더니, 당시 모두가 추종하던 궁극의 경지인 '아라한'이라고 소개를 한 것이죠.
재차 부처의 생각을 물은 그 수행자는 고개를 흔들며, '그럽다고 칩시다'하며 무시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가지 증거를 찾았습니다. 비록 아라한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정의롭지 않고, 세속에 찌들었다 하더라도, 깨달은 이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판단할 이성은 존재한다.
저는 깨달은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 깨달음을 추구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 방식이 어떤식으로 발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여 출가를 할지도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로는 그저 제 삶에 충실하고, 공부하고, 매일 명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삶을 사는 정도입니다.
제가 살아생전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는 존재는 붓다, 레스터 레븐슨 딱 2명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신이 인간의 몸으로 행한 사랑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대구에 사시는 한분도 그 깊이는 다르지만 깨달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레벨이 다를 뿐이죠. 또 한 분 서울에 사는 명상가 한분이 있습니다.
그건 깨달음 그처에도 가보지 못한 저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삶이 그들의 말과 일치하며, 합리적이며, 논리에 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내새울 부분은 보이고, 감추고 싶은 것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미지 메이킹하는 정치인들처럼 선거철마다 서민이라 말하고, 당선이후에는 내가 당신과 같다고 생각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소중한 주인으로써의 행사를 하죠.
그러니 민주주의가 무너진것은 그 정치인의 탓이 아닌, 주인인 당신들과 제 탓입니다. 물론, 저는 현 정부를 뽑지도 않았고, 앞서 말씀드렸듯, 이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공동체 의식이란 것을 무너트린 그들에게는 과거 프랑스가 행했던 결단 수준의 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술직하게 말씀드리죠. 단순히 죽음이 아닌 그들의 생존의 터전을 없애고, 일주일에 한번 매를 맞게 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당신들이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무너트렸는지 느끼게 한 이후, 죽든지, 그렇게 살든지 선택하게 해주는게 맞다고 봅니다. 최소한 1년간
저의 용서는 죄지은 자에게 더 이상 죄짓게 하지 아니하고, 희생자의 고통을 체험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그 또한 용서의 실천이지요.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며 끝냈습니다. 이런 내 생각때문에 아마 신은 나에게 그런 권력을 주진 않을거야. 다행인거지. 난 정말 그렇게 할거거든. ㅎㅎㅎ
마리아 상에게 기도를 드리며, 제가 교리를 처음 접하고 세례를 받았던 1999년, 그 시절에도 그 이후로도 하지 않는 기도를 제가 요즘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기도를 들으면, 앞서 말씀드린 마음 '너나 잘하세요'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느님, 그리고 마리아님, 저는 인간이기에 제 안위와 제 가족을 돌볼 수준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도, 제가족도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사회가 좋아야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 신께서 주신 하루를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고, 제가 제 가족들에게 봉사하려 하듯,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한 발자욱이 당신이 말하시는 천국으로 이끌 갈 수 있는 한걸음이 되게 하소서. 누군가는 뒤로 물러서고, 누군가는 가만히 있으며, 누군가는 나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 이후 하느님 자리가 아닌, 이 세상 속에서 언젠가 이루도록 인도하소서.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제 삶에 충실하게 사는 일임을 믿습니다. 주신 하루, 가치있게 시간 쓰겠습니다. 아멘 (성호긋기)
오늘의 draft였습니다.1시간을 적었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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