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스. 4인 4색 불고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화 더 킬러스에 대한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를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미장센'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미장센은 프랑스의 연극에서 사용된 용어로 어떤 작품의 의도를 시각적 장치를 이용해서 표현하는 것이죠. 단순하게 미적 즐거움을 통해 메시지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뉘앙스가 다르다 할 수 있는데, 딱~ 거기에 맞는 영화가 더 킬러스입니다.

 

4편의 단편, 그러나 하나의 큰 줄기

더 킬러스는 하나의 스토리가 아닌 4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흔히 옴니버스 형식이라고 부르죠. 여기에 감독도 모두 다른데 공통적인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심은경이라는 배우이며, 하나는 킬러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작은 1927년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발표한 이 영화와 동명의 '더 킬러스'에서 모티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애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이라는 유화가 그것입니다.

 

특히 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의 이미지는 4가지 에피소드 전반에 걸쳐있는 이미지로 이명세 감독님의 무성영화로 넘어갈수록 이 그림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상상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hcampanella&logNo=222850341708&photoView=0

 

 

4개의 각 단편의 제목은 변신, 업자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무성영화입니다. 이 중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각종 영화 관련 프로에서 본 작품의 홍보로 사용된 '업자들'이 가장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개인적인 사견을 밝혀봅니다.

 

이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하나하나 이 영화의 특색별로 이야기를 거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변신

감독 : 김종관  / 메인배우 : 심은경, 연우진

김종관, 심은경, 연우진 (좌측부터)

김종관 감독님은 수많은 작품을 연출하셨지만, 대중이 알만한 것은 아이유가 주연으로 여러 단편으로 만들어진 '페르소나',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국판 리메이크였던 '조제'의 감독이셨습니다. 네 편의 작품 중 미장센과 스토리를 가장 적절하게 버무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 속 심은경은 바텐더로 등장하고, 연우진 씨는 폭력조직에 쫓기는 인물로 바텐더인 심은경은 묘한 표정 속에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붉은색과 검정으로 대비되는 '변신'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강렬한 욕망.

 

다소 공포물이 될 수도 있는 기본적인 설정에 인간 내면에 담겨있는 폭력성과 성적인 욕망을 아주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힘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이 부풀러 졌을 때 행할 수 있는 폭발력.

 

억압된 감정의 격렬하면서도 파괴적인 표출을 담아낸 킬러, 즉 우리 안에 모두 하나쯤은 숨어있는 잔혹함을 적절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으로 무척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업자들

감독 : 노덕  / 메인배우 : 홍사빈, 지우, 이반석, 심은경

노덕, 홍사빈, 지우, 이반석 (좌측 부터)

노덕 감독님은 대중적으로 알만한 영화로 '연애의 온도', '특종 : 량첸살인기'가 있습니다. 업자들은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더 킬러스의 4편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만든 영화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장센에 있어서는 나머지 세 편보다는 부족하지만, 상대적일 뿐이지 별도로 떨어트려 놓았을 때 제일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지우라는 배우의 새로운 면을 보았습니다. 데뷔작이 '이층의 악당'으로 한석규와 김혜수가 나오는 영화였고, 거기에 김혜수의 중2병 딸로 처음 등장해 저 개인적으로도 그 이후 꾸준히 주목하는 배우 중에 하나입니다.

 

킬러라는 특수한 직종(?)을 업자에 빗대어 현재 한국의 하도급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살인이 10만 원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금액에 이루어지며 그 비논리적 결여감을 '도덕심'과 '사명감'으로 채우고 있는 즉, 열정페이 같은 부조리함을 담아내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처럼 결국 이 시대 젊음에게 피를 묻혀 이득을 취하는 기성세대나 기득권,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 모든 면에서 구조적인 모순을 갖추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 (다만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도 어리벙벙한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실웃음을 내뱆게 만드는 상황들.

 

결국 실제 죽여야 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전달 과정에서 엉뚱하게 변질되고, 그런 과정에서 피해자는 새로운 가해자가 되며, 가장 말단의 꼬리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또다시 그들을 착취하던 이들과 동일한 하도급을 주는 모습. 그런 그들이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이 공무원 학원 등록과 같은 일인 것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최고의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업자들은 단편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짧게나마 등장하는 이름값있으신 조연분들 덕분에 퀄리티 역시 낮지 않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더 킬러스에서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평할 만큼 강추인 작품입니다. (마지막에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피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검색으로 진위여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사건의 실체가 이후 드러났던 것은 살인이 아닌, 최저임금 위반 신고였다는 것은 점은 끝까지 블랙코미디 같은 우리 현실을 조롱하며 씁쓸한 끝맛을 남기게 하죠

 

※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감독 : 장항준  / 메인배우 : 장현성, 오연아, 박상면, 이준혁 , 김민, 전석호

장항준, 오연아, 이준혁, 장현성, 박상면, 김민 (좌측부터)

오연아 씨는 장항준 감독의 시그널을 통해서 주목을 받으셨던 배우시죠. 이쁘시지만, 뭔가 섬뜻함을 담아내시는 기술을 가진 분이라 생각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 다른 분들은 모두가 알만한 분이시고, 오랜만에 박상면 배우님, 넘버 쓰리에서 보여주시던 재떨이의 무식함도, 그 이후 오랫동안 해오셨던 코믹함도 아닌 뭔가 거친 킬러의 모습 좋았습니다.

 

그리고 김민 배우는 매우 낯선 얼굴이었으나, 의외의 반전과 액션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제목이 가지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의 접근, 그러면서도 1970년대의 레트로한 느낌 속에서 펼쳐지는 스릴러적인 재미. 장항준 감독스러운 맛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미장센에 있어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고, 극의 스토리에 아주 잘 맞춘 색감과 구도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연아 씨의 관능적미 너머로 보이는 스산함도 마음에 들었고요. 적당히, 시점시점마다 품게 되는 궁금함, 그리고 적절하게 예상되는 이야기는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아 흥미롭게 보게 되는 힘을 가집니다.

 

좋은 단편 한편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 무성영화

감독 : 이명세  / 메인배우 : 심은경, 고창석, 김금순, 곽민규, 이재균

이명세, 김금순, 고창석, 이재균, 심은경, 곽민규 (좌측부터)

이명세 감독님이야 워낙 유명하시죠. 일단 대표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국내 영화에 한 획을 그으셨던 분이죠. 그 이후로도 비주얼적인 미장센에 있어서 국내 대표적인 감독이십니다. 이 프로젝트의 구심점이시기도 하시죠.

 

무성영화라는 제목처럼 흑백영화 감성으로 만들어졌지만, 초반 시작 부분에서의 박진감 넘치면서도 뭔가 초현실적인 편집기법은 과연 이명세 감독이구나 싶을 만큼 특별한 내용 없이도 하나의 미디어 아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더 킬러스의 중심축이 되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속으로 영화의 무대를 옮겨가죠. 하지만 거기까지. 전반적으로 펼쳐지는 미장센은 끝까지 나쁘지 않습니다만, 도무지 이야기의 산만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김금순, 곽민규, 이재균이라는 분은 너무나 낯설었고, 그 연기도 뭐랄까.. 좀 연극 같다고나 할까 (극본이 더 문제 같아 보이지만). 그나마 고창석 배우 역시도 무슨 역할인지 모르겠으며, 심은경 배우는 다른 3편과 달리 가장 이야기의 중심에서 기묘한 캘릭터를 잘 소화해 내지만, 결국 이야기 자체가 기묘함에 산만하다 보니 지금까지 다른 세 편이 가진 나름의 영화적 흥미로움에서 덜하든 충만하든 잘 유지되어 오던 서사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직 내용을 제외하고 보이는 미장센, 그마저도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나 나올법한 어색한 콤비 같은 캘릭터는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느낌이랄까. 마무리가 좋아야 하는데, 사실상 더 킬러스라는 4편의 영화 전체를 망쳐버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너무나 아쉬운 감정을 지울 수 없네요.

 

사의찬미와 20분 빨리 흘러가는 시계, 그리고 두 명씩 짝지어진 캘릭터들과 결투, 거기에 뭔가 뾰족 튀어나와 보이는 심은경의 캘릭터. 무언가 잡힐 듯하다가도.. 제 수준을 너무 넘어서버린 심미적이며 심층적인 이야기는 이해 불능이었습니다.

 

※ 총평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 Apres cela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도원의 입구 돌 비문에 "아프레 쓸라 (Apres cela)"라고 세겨져 있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다음은?'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솔직히 '무성영화'를 보고 난 뒤에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등장하는 이 문구가 나름 맥락이 있어 보입니다.

 

어떤 이야기든 끝이 있죠. 그러나 사실상 인생도 세상도 끝이란 게 있을까요? 항상 그 이야기 너머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게 특별하든, 오늘과 같던 '그다음'이란 것이 존재하죠. 그렇기에 이 구문처럼 이다음 어떤 킬러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함이 일었습니다.

 

초현실적인 킬러였던 변신, 너무 현실적이었던 킬러 업자들, 뭔가 추억스러웠던 킬러였던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저 연극 같고, 예술품 같아서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이었던 무성영화.

 

전체적으로는 75점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실험이 상업적 자본으로 기획되기에는 쉽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고, 솔직히 관객들에 따라서는 이런 영화에 대해 별도의 비용을 치르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실험들이 또 영화의 발전을 낳는 밑거름이 될 것이란 생각만은 분명합니다. 나머지 2편의 확장판 이야기에 대해 호기심은 있습니다만, 굳이 애써서 찾을지는 미지수 같습니다.

반응형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네이버 영화, 더 킬러스 트레일러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