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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6 금 0601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리뷰파파 리파 2024. 12. 6. 07:11

요즘 조명가게라는 드라마가 대중에게 소개되었습니다. 강풀 작가의 웹툰 원작이기에 시대적인 키워드는 과거이겠지만 이야기는 일종의 클리셰를 따라갑니다. 그건 뻔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인류가 문화를 형성하면서 알게 된 여러가지 학습의 결과이며, 일종의 클래식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오래전 부터 커뮤니티에는 정치 이야기 사절과 같은 카페 운영에 있어서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단체를 이끌어본 결과, 사람이 가장 무서운게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다른 문화가 아닌 유사하 문화의 작은 차이에서 더 큰 갈등이 벌어진다는 것을 우린 역사적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소수의 깨달음을 성취한 이들의 메세지를 보면,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 우린 허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면 무척 역사적이면서도 과학적이며, 또 인문학적인 고찰로 증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일종의 사고와 현상에 대한 가설입니다. 과학은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접근하는 방식으로 종교를 펼친 2500년전 고타마 존자께서는 너무나 단순한 가르침으로 이 모든 세상사에 대해서 한가지로 표현했습니다. 바로 '인과'입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100년이 아닌 1000년으로 넓혀서 바라보면, 지금의 현실은 일종의 꿈입니다. 꿈이라는 말이 실존하지 않는 것, 망상, 허상으로 대표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24시간 인생이라고 볼때, 우린 눈을 뜨고 깨어나서 보내는 시간도, 눈을 감고 잠든 시간 동안 경험한 그 허상도 모두 체험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체험이며, 그것을 통해 우린 거듭나고 성장합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순간 제게 두려움은 잣아들었습니다.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두려움에 떨지도 않고, 혹여 내일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잣아들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책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줄어든 공간은 웃음과 행복감, 그리고 나름의 확신과 믿음으로 채워져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정의 하면 알아차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어떤 감정, 어떤 생각, 어떤 행동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외부적인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인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습'이며, 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느낍니다.

 

어제 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 '자살 마렵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한달에 150만원을 받는 가게 세를 받고,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가게에 일하며 살아왔던 친구입니다. 한때는 모 외국계 회사에서 아시아 탑을 하던 엔지니어였던 친구죠.

 

저는 백수입니다. 그리고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7월에 공황과 우울감에 이기지 못해 사회를 등지고 집에서 칩거를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래도 빚없이 내게 주어진 형편에 맞혀 살아왔던 원인 덕에 약간의 저축으로 벌써 5개월째 수입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 친구의 고민이 제게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저도 한달에 150 월세를 받는 가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는 7월에, 아니 그 이전부터 제가 어떤식으로 헛된 망상에 빠져 결국 현실의 삶을 망치는지 정말 옆에서 지켜보았던 후배입니다. 매일 하루 2갑도 넘는 담배를 태우며, 저한테 그러다가 빨리 죽는다며 위로하고, 걱정해주던 이였습니다.

 

한번씩 복에 겨운 고민(그러나 당사자에겐 아주 절망적인)을 듣기가 싫지만, 오롯히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왜냐면,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거든요.

 

사실 모든 답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우린 모두 자신의 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니까요. 아상(我想), 난 이렇게 살아야해, 난 이정도 돈은 받아야 하고, 이정도 인정은 받아야 하며, 이 정도 책임은 져야해. 수많은 자기라는 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괴롭게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즉, 나랑 비슷한 학력이지만 더 잘나가는 누군가.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인데 더 잘나가는 누군가, 나보다 더 잘 났지만 나도 어쩌면 그 사람처럼 과거에 이러했다면 되었을 수도 있는 누군가

 

즉 타자의 삶, 타인과 비교하는 삶 '대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엔 아직 온전히 스스로를 바라보고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대상의 삶으로 형성된 아상이 있습니다.

 

법륜스님의 글을 보면, 자신의 법문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고개를 젓는다고 말하시더군요. 그건 결국 법문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과 맞으면 끄덕이고, 다르면 틀리다고 말하는... 결국은 자기 생각이 기준이란 겁니다.

 

빌 크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말헸죠. 그러나 문제는 정치입니다. 정치는 우리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라는 것이 어떤 행위입니까?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 격론을 벌이며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정치입니까?

 

정치란 합의를 통해 어떤 결정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따라 사회는 움직이며 그것이 바로 경제이며, 삶입니다. 그러니 모든 행동의 근원에는 생각이 존재하며, 그렇기에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꾸듯, 정치를 바꿔야 사회의 경제, 즉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 그저 '참나'를 기준으로 볼때 우리의 지금의 삶은 하나의 꿈일 뿐입니다. 나라고 믿는 존재. 나라고 생각하는 이 육체. 당신이 1000년을 사는 존재이며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라면 과연 지금의 삶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요?

 

시의성있는 이야기를 한다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우린 아주 운이 좋게 그것을 해프닝 수준으로 막아내었습니다. 저는 그 대통령이 결정이 극우 유튜버들을 평소 보고 사고를 형성한, 즉 허상에 의한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날 밤에 왜 많은 시민들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총에 맞을 수 있는데, 곤봉에 두들겨 맞을 수 있는데(여지껏 우리의 역사는 그러했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왜 거리로 나갔을까요?

 

 지금도 온라인을 보면, 또 이번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냥 전체 국민의 1/4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그런 결정을 내리고 있는 이들.

 

저는 윤석열, 김건희 그리고 그 이하 국민의 힘과 같은 정치인들이 지금 보여주는 비상식적이고 헌법을 유린하는 행동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아상이 있고, 그들에겐 그것이 이익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지지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솔직히 지금 범죄에 가까운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여전히 존립할 수 있는 것은 바로 25%의 사람들이 그들의 흉기이기 때문입니다. 화살이 사람을 죽여 취하는 이익은 없습니다. 단지 뽀족할 뿐이며, 누군가에 의해 쏘아졌기 때문입니다.

 

돈을 받고 여론을 선동하는 이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현 상태에서 판단, 피아식별을 못하고 자신이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아상들.

 

사회물리학적으로 우린 지금 과도한 엔트로피 상황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며 거기에 수많은 반응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그것을 묵묵히 구경하고 즐길 수도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의 영적 성장과 삶의 가치를 위해 투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이렇듯 저렇듯 세상은 돌아가고 나는 나의 역활을 다하려 한다고 할 수도 있죠.

 

어떤 삶이든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이 당신이 꾸는 꿈입니다. 그 선택에 의해 세상은 어떤 결정적인 상태로 이끌어질 것이고, 그 집합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틀이 될 것입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오늘보다 나은 세상은 약자에게 손 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 강자의 손을 손 쉽게 잡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언젠가 이 지구에는 그런 세상이 올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알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위정자며, 탐욕을 저지르는 정치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흉기가 되어준 이들이 더 문제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흉기를 무디게 하는 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문화가 형성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더디고 충돌도 많겠지만, 인류는 그렇게 진화해가고 있습니다.역사적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증명 가능합니다.

지성을 가진 군인들이었기에, 어쩌면 무자비한 발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그냥 지켜본다면, 누군가 살해하는 현장에서 최소한 경찰에 전화를 하고, 하지마세요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할 상황에, 그냥 내 일이 아니라고 지켜본다면 언젠가 그 일은 카르마에 의해 자신에게도 돌아 올 것이고, 놀랍게도 그 때 스스로 만든 그 사회의 흐름에 맞춰 사람들은 지켜볼 것입니다.

 

그때 알게 되겠죠. 이런 기분이구나. 나를 찔러 죽이는 자보다, 휴대폰 사진으로 촬영을 하며 sns에 나 오늘 살해 현장 보았어라고 글을 올리는 사회를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어차피 모두가 허상이고 꿈입니다. 그러니 어찌되던 상관없습니다. 조금 더 딜 뿐, 그렇게 인간은 생각을 공유하며, 마치 하나인 것 같지만 각자의 삶에 영향을 주며 사회아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일이 잘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일 죽어도 미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이 사회가 전복되고 모두가 지옥같은 삶을 살기를 바래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 가진 것도 미련도 없으면 공포가 없고, 어차피 죽고 싶고, 미련 없는 세상, 모두 다 없어져버려라는 마음을 가지는게 정상일진데..

 

참 희안하죠. 성공을 바라고 싶고, 더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이들. 경제 뉴스를 챙겨보고 회사의 사장이라는 분들이 이 불법적인 윤석렬과 국민의 힘을 지지하고, 또는 정치 이야기는 싫다며 방관합니다.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제 마음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다시 꿈에서 깨어 좀 더 나은 내 삶을 위한 루틴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노와 어리석음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도 다 놓고, 결국 파레토이 법칙인 20:80 혹은 7:3의 비율로 세상은 구성됩니다. 그 우주의 법칙에 온전히 맡기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며 열심히 내일 죽어도 후회없이 말하고, 생각하고, 성장할 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리아 상에게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번 주에 각자 어떤 꿈을 꾸든, 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낸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저 겁쟁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방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동원되어 흉기가 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부디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야 한다면, 더 이상 시민이 아니라, 권력자와 그 칼을 쥐고 흔드는 위정자들의 피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엔 그것이 이루어 지리라 믿습니다. 또한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고 살아갈 각오도 되었으며, 혹은 이런 글이 빌미가 되어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중요한 것은, 어떤 꿈이든 당신이 창조한 삶이니 그 삶을 살아가시면 됩니다.

 

아침 루틴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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