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 읽으신다면 Part.1부터 차례대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별도로 읽으시면 이해에 어려움이 있으실 수 있으므로 재미를 보장드리기 어려운 바입니다.
20. 나, 걸레, 물 그리고 집
먼저 걸래 2개를 준비했습니다. 창틀에 쌓인 먼지, 창문틀 역시 곰팡이처럼 검게 피어올랐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 눌어붙어 있었으며 돌조각들까지 보였습니다.
처음엔 일단 창문틀에 쌓인 젓은 채 쌓인 먼지를 걸래로 딱기 시작했습니다. 걸레는 순식간에 더러워 졌죠.그렇게 닦다 보니 창문틀이 눈에 들어옵니다 또 닦죠. 좀 깨끗한 면으로 닦는다고 하지만 얼룩이 조금 남습니다. 그러다 보면 덩어리 진 먼지들을 창문 밖으로 털어냅니다. 이렇게 한계까지 오면 결국 걸레를 빨아야만 합니다.
세숫대야에 깨끗한 물은 순식간에 더러워집니다. 그러다보니 밖으로 꺼내서 비벼대기 시작했죠. 처음과 달리 걸래는 거의 회색조를 띠고 있습니다. 일단 먼지부터 처리하고 창틀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아주 구석진 곳의 먼지는 걸래로 아무래해도 잘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 제 손가락을 사용했죠. 오히려 먼지가 더 잘 묻는 겁니다. 더구나 약간 손이 더러워질뿐 오히려 효과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날카로운 부분들이 있다는 등도 느끼기 시작했죠. 그런 식으로 먼지를 제거하고, 걸레로서 다시 닦으니 훨씬 걸레의 오염이 덜했습니다.
경악할 정도의 고양이 털 (새가 한마리 죽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이 나오고 시커먼 먼지들, 검은 세숫대야에 물에 먼지들을 먼저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덩어리들이 너무 많으니 그 물을 계속 쓸 수는 없었습니다. 버렸죠.
그리고 무엇보다 걸래에 있는 물들을 최대한 차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먼지들을 물로 불렸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오염된 물이 창문을 더렵혔습니다.
손톱으로 긁고, 걸래를 돌려가며 최대한 닦고, 다시 물이 사용불가 상태가 되면 버리고 하다 보니 갑자기 더 이상 이 걸래는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번 청소 때만 쓰고 버리자는 생각으로 계속 청소를 했죠.
이젠 바닥타일도 문제였습니다. 버려진 물들이 점차 흙이 가라앉아 더럽혀지기 시작했죠. 최소한의 물로 적절히 이 모든 것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낭비는 딱 질색이거든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물은 돈이잖아. 그런데 물은 가끔 하늘에서 공짜로 내리기도 하는데
21. 나, 신, 에너지 그리고 우주
갑자기 개념이 바뀌는 겁니다. 지금 내가 걸레라는 '신'을 이용해서 우주에 쌓인 먼지를 닦고 있어. 우주는 끊임없이 창조되고 파괴되지. 그것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야. 에너지는 때로는 돈을 주거나, 어떤 것을 이용해 얻을 수도 없지만 언제든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내가 있어
우주를 닦아도 되고, 안 해도 돼. 그건 내 결정일뿐이야. 여기서 '신'을 거창한 무한의 존재가 아닌 우리의 신념, 믿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이 세숫대야가 이 세상 같은 겁니다.
처음 세숫대야에 부어진 물은 모두 깨끗합니다. 거기에 나의 도구인 '신'이 몸을 적십니다. 차내도 되고, 아니어도 됩니다. 에너지 보전 법칙처럼 물은 정해진 양만큼 세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주를 닦아 냅니다. 더러운 부분들 먼저, 그러다 보면 걸래자체가 검은 덩어리들이 묻어있게 되죠.
세숫대야인 이 세상에 담그면 그것은 검게 흐려집니다. 대신 걸래는 조금 나아진 정도입니다. 그걸로 또 닦아냅니다.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고 버려야 합니다.
새 물을 받았지만 하얗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도 제거해야 할 먼지 뭉치들이 많습니다. 살짝 물을 적셔 고체화된 것들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닦아 냅니다. 물은 맑으면서도 커다란 먼지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 남은 것들은 맑은 수건으로 닦아주면 될 법한 것들, 그런데 아뿔사, 뒤쪽 창문을 하지 않았네요. 또 반복됩니다. 그렇게 또 몇 번...
걸레는 구정물에서 빨릴 때도 있고, 깨끗한 물에도 빨릴 때가 있으며 그러다 보면 서로 오염물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더럽히기도 하고 서로를 씻어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버릴 것 같이 검었던 걸래가 조금씩 깨끗해지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물을 버릴 때도 최대한 바닥에 흩어진 이물질들을 효과적으로 씻어내도록 했죠.
엉뚱하게도 저는 윤회와 우리의 운명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보면 우주 속에서 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다 세상을 더럽히기도 하죠.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으면 물은 버려지고 다시 깨끗한 물이 부어집니다. 환생이죠. 그러나 나의 도구인 '신'은 아직 이전의 삶에서 남겨진 이물질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온전한 세상은 나로 인해 더럽혀지고, 그 더럽혀짐이 또 내 세상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 속에 들어가 보야 깨끗한 나를 발견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안에서도 교류는 이루어집니다. 느껴지지 못할 뿐. 그리고 나. 참자아. 이 존재는 그리 오염되지 않습니다. 살짝 더럽혀져도 걸레와는 다릅니다. 적당히 유연하면서도 적당히 단단한 존재.
다 된 듯 깨끗해지다가도 다시 뭔가 꼬이는 느낌도 들고, 뭔가 희망 없다가도 조금식 변화되어 가는 모습, 그렇게 우주의 일부인 창틀은 조금씩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물을 적게 쓰는 방법은 때로는 구정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임계에 달하면 새롭게 물을 쏟고 다시 씻어 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거구나. 우리가 하나로 움직이는 방식이. 어떤 대는 참자아로, 어떤 때는 '걸레인 신'으로, 새로운 세상의 에너지를 이용해, 우주를 정화하는 것. 에너지는 제한된 것 같지만 사실 무제한입니다. 그러나 그걸 쉽게 인식은 못합니다. 그리고 우주는 우주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가장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것을 운영합니다. 그러니 때에 맞게 더러운 걸래로 시작할 수도, 더러운 물에 다시 담궈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손은 더럽혀진 것 같지만, 우리는 신을 이용합니다. 참자아는 그저 약간의 물이면 정화됩니다.
온전히 정성스럽게 창문 청소를 하다 보니 갑자기 이런 깨달음이 전해져 왔으며, 그 전날 읽었던 레스터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르마, 윤회, 오직 나는 신의 일부이며 신이 모든 것을 행한다. 우린 모두 하나다. 우린 만유이다.
그 먼지 역시 저는 제거 대상이 아니라 제가 방치해 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너희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관리되는구나. 그럼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게 모든 것이 함께 그 공간을 정화해 갔습니다.
약 1시간 반의 시간 속에서 땀과 함께 마음이 후련해지는 뭔가를 느꼈습니다. 이제 알았다는 감정. 아이들이 일어나자 그 짧은 체험에 대해서 말을 열었지만, 반응해야 해? 들어야 해? 굳이 듣지 않겠다는 이들에게 말할 것도 없으며... 이건 결코 그 이야기 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접 닦아보고, 효율적인지 무너지를 경험해야. 왜 걸레가 구정물에 몸을 담궈야 하는지, 왜 그래야 더 깨끗해지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왜 걸레가 신처럼 느껴지는지, 때 묻은 신은 자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 그리고 마냥 그것만 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때가 되면 또 부분도 챙겨야 한다는 것을.
22. 억울할 것 없어. 그게 가장 효율적인 거야
왜? 내가 이런 운명인 건가? 적잖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정말, 왜 그런 것인지. 그런데 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그 질문의 방식은 조금 다라지지 않을까. 우주를 운영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당사자에게는 불쾌한 상태일지 모르지만 그게 제일 빠른 길이기에 사용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에너지의 낭비와 시간이 걸립니다.
단순히 인간이 개념에서 그러한데 거대한 절대자의 스케일에서는 어떨까요? 그러니 억울하지? 아냐.. 그게 제일 효율적인 거야?
여러분 빛이 물에 닿으면 갑자기 꺾어지는 것에 대해 '효율 가설'이란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게 가장 빛이 빨리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정확히 누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굳이 찾지도 않겠습니다. 명백한 사실이라)
이 우주는 그냥 흐르지 않습니다. 최대한 자신이 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관리합니다.
사실 제가 전달할 핵심 메시지는 이번화로 마칩니다. 다만 작으나마 현재의 제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마치며
이 이야기를 끝내기로 합니다.
에필로그 (경어를 쓰지 않겠습니다)
아침에 고3인 아이를 태워주면 도서관에서 다이어리에 하루 계획을 쓰고 짧은 일기를 적는다, 감사의 부분도 있고, 그저 지난밤 인상적인 이야기를 적을 때도 있다. 아침은 거르지 않는다. 실직한 사위를 위해 장모님이 사주신 고구마를 씻어서 생으로 그냥 씹으며 먹는다. 먹을 때는 최대한 그 감촉과 맛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래 씹게 된다. 약을 챙겨 먹고 아이를 태워주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점심이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가벼운 식사를 한다. 집을 청소하고 몇 가지 운동도 한다. 최근에는 이전에 듣던 경제 팟캐스트를 다시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귀를 열어둔다. 책 위에는 20년 전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 짬날 때 한번씩 읽는 중이다.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그 의미를 마음에 세긴다. 그리고 금강경을 외우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이 너무 평안하다, 그리고 집에 2달간 있으며 내가 얼마나 가족에게 무심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여러 문제를 깨달았다. 만약 그것을 모른 체 몇 년을 더 보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할 일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왜 신이 나에게 그러한 일을 계획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필요했음을 이해했다.
금전적 손해, 괜찮다. 밥 먹는데 지장 없다. 최대한 기름을 아끼려고 걷고, 자전거를 탄다. 하지만 오히려 운동이 된다. 달리기를 시도했지만 그건 좀 버겁다. 어쨌거나 몇 가지가 '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설거지가 그렇다. 그릇뿐만 아니라 전체를 씻어낸다.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만족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싫다. 이젠 음악을 들으면서 해도 온전히 그 습관 그대로 진행이 된다.
정신과 약은 수면 외에는 사실 내 마음을 다스리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오만 치 말자. 네가 뭘 안다고.. 의사 선생님과 조금씩 상의하며 약을 줄여나가는 중이다. 이번주부터 그렇게 말씀을 해 오셨다. 줄여도 큰 차이가 없다.
가야 할 직장이 정해졌다. 놀랍게도 내가 딱 쉬고 싶은 12월까지. 11월, 12월까지 지금 하고 있는 이 글 쓰는 일과 배움을 꾸준히 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 디지털 노마드는 사실 나의 꿈같은 거였으나 시도하지 못했다.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그냥 이걸 하는 게 즐겁다.
처음엔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자연스럽게 써내려 져 간다. 하지만 아직 키워드 검색이라거나, 여러 노하우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노트북이 너~~ 무 느리다. 윈도 7, 새 걸로 사자는 아내. 그런데 여전히 나는 미련을 못 버린다. 한소리 들었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고.
존경한다. 통찰이 크다. 하지만 모른다. 이게 즐거움인지 백수의 익숙함인지.
회사 생활 할 때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 쪽 일에 대한 프러포즈가 들어오고 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오직 나는 한발 물러서 있고, 신이 행하게 하라. - 레스터 레븐슨 -
집착을 버려라. - 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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