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 읽으신다면 Part.1부터 차례대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별도로 읽으시면 이해에 어려움이 있으실 수 있으므로 재미를 보장드리기 어려운 바입니다.
14. 아나키스트 고타마 붓다
애니미즘이 발달한 힌두 사상, 힌두라는 말은 강에 사는 사람들, 즉 인도 갠지스 강 사람을 부르던 말입니다. 그들을 부르던 아리아 유목민들이 H 발음이 묵음이어서 힌두가 아닌 지금의 '인도'가 된 것. 결국 인도란 강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며 오랫동안 자연과 소통하는 다신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붓다의 깨달음 이전의 기록은 없다합니다. 그가 네팔족에 있던 사카족의 왕자였다는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 후대에 꾸며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다고 합니다.
일단 그는 한 힌두스승 및에서 고행 수행을 했었죠. 6명의 동문이 있었으나 그중 가장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괴로움만 남을 뿐, 그 깨달음에 들지 못하자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 길로 떠나 보리수나무에서 호흡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지요. 그러나 이제 갓 나이 35살의 출가자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는 홀로 그 성취를 즐기려 했으나 신이 나타나 중생에게도 가르침을 설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것이 낫겠다하여 소위 전도를 시작하러 떠납니다. 그러던 중 수행자를 만나죠. 그가 보기에도 붓다에게는 뭔가 광채가 느껴져서 어느 스승 밑에서 무슨 수행을 하냐고 물었더니. 붓다께서 "나는 위없는 아라한이다" 란 식으로 이야기한 거죠.
그러자 그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렇다고 칩시다"하고 떠난 거였죠. 실패였습니다. 그리하여 붓다는 다음으로 자신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을 떠올리다가 오래전 같이 수행한 동문이 생각난 것이죠.
하지만 저 멀리서 붓다고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벌써부터 눈치채며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합니다. "이봐 저기 수행하다가 도망친 고타마가 오고 있으니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옷도 받아주지 말고, 자리도 주지 말 것!!"
이렇게 아주 모른 척하겠다고 서로 약속을 했으나, 한 사람이 묵례를 하고, 한사람이 옷을 받아주는 등, 그렇게 서로 자리를 앉아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논쟁이 오갔으나 결국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죠. 그리하여 한 명의 제자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또 열심히 가르쳐 두 명도 마저 깨달케 됩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몀은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해 보충수업 받고, 나머지 3명이 탁발(돌아 다니며 밥을 얻어 오는 행위)을 하여 6명이서 나누어 먹었죠.
그러자 드디어 남은 두명 역시 깨달음을 얻고, 부처에게 귀인의 하여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오늘날 불교는 신격화되어 있었으나 초기 불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전히 부처라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이 인간이라는 육체와 마음의 한계를 벗어났을까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불경과 니까야 등을 조금씩 접했습니다. 특히 '율장'이 기록된 '인간붓다'라는 책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거의 필사를 했었죠.
보기에는 적어 보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려 정리를 다 마치자, 그 역시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살아야 했으며,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공포가 아닌 해탈로 가는 참된 길이었구나. 또한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하나씩 실수도 하고 그렇게 각자의 의견을 들을 줄도 알았으며, 그에 맞게 합리적인 답을 내놓는 옳은 심판관이기도 하셨죠.
그의 제자들은 엄청난 신통력으로 신도들을 모으나, 부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이토록 과학적이고 치밀하게 그것도 2,500년 전 인간의 사유와 삶에 대해서 미적분을 하듯 고찰하고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그 시절 그는 종교계의 아나키스트였습니다. 신에 의지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을 등불 삼아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죠. 물론 그의 사후, 그는 자연이 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믿는 불교는 대승불교가 주류로 당시 힌두교 적인 문화가 상당히 개입된, 사실상 힌두화된 불교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제야 왜 그토록 수많은 부처가 있고, 이런저런 개념들이 있는지 이해되었으며, 단순히 다신교로만 알던 힌두교 역시 우파니샤드를 통해 얼마나 심오한 사고와 원론적인 사유를 했는지 깜짝 노랬습니다.
책 한 권 한 권을 꼼꼼히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과거 속독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버리고, 마치 저자와 대화를 나누듯 읽었으며, 다시 정리하며 구조화했습니다.
15. 모든 것은 증명되어야 한다. 레스터 레븐슨
사실상 이 분의 책 때문에 저는 깨달음이라는 단어, 수행이라는 단어에 입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새삼 심리적 고통을 느끼던 시절 오래전 읽었던 궁극의 열쇠를 다시 찾게 되었던 것이죠.
저는 아주 잘 정리된 마인드 맵이 있었지만... 이미 세월이 흐른 탓에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다시 어렵게 그분의 글을 pdf로 정리한 '궁극의 열쇠'를 입수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4번을 읽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욕망에 관련된 부분은 혼돈스러웠습니다. 그는 모든 욕망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으나, 또 한편으로 그러면 모든 욕망을 이룰 수 있다는 사고 작용으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수차례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다수의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 질문자가 저의 마음을 대변한 질문을 한 것이죠.
"욕망을 다 잊는다는 건, 그냥 아무렇게나 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자 그는 욕망을 원한다면 이루면 됩니다. 그냥 해내면 되는 거예요. 당신은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돈을 벌고 싶으세요? 그럼 버세요. 백만장자가 되고 싶으 신가요? 그럼 되면 됩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욕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궁극의 열쇠의 시작은 드라마틱합니다. 레븐슨은 어느 날 불치병 판정을 받고 좌절합니다. 그리고 물리학자이자 사업가였던 그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죠. 3달간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나는 무엇인가', '나와 세상의 관계는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이 3가지 질문을 붙잡고 명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3달 만에 그는 차츰 답을 찾고 급기야 모든 해답을 얻어 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죠. 때때로는 초능력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죠.
그는 과학자였습니다. 하나씩 실험을 통해 증명해 가기 시작했죠. 결국 그는 백만장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실제로 그것을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것을 그냥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스스로 체험해 보라고 하죠. 말과 단어는 그 체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말합니다.
그렇게 그의 책에서 궁금한 것들 부분을 찾아보고자 유튜브를 찾던 중 '견성'이라는 주제의 유튜브를 보게 되고, 또 그것을 통해 찾던 중 '조셉 베너의 내 안의 나'를 찾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조 디스펜자의 여러 책들과, 멘탈리셋이라는 책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뭔가 이빨이 맞지 않는 부분들
너무나 단순한 현상을 복잡하고, 반복된 구문으로 설명하는 유튜브의 여러 해석들과 책들에 내용에 지칠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쉽게 접근하고 새로운 통찰을 이야기하는 몇몇 분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최종적으로 멘탈리셋이 가장 최종적인 답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원리와 매우 적절한 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법적인 것도 있긴 했지만 상당히 모호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사실 그의 이야기의 절반은 그런 자기의 사유에 대한 부분이지만, 또 절반인 실제적인 자기 탐구는 그저 그동안 시크릿 관련 서적들의 짜깁기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저자에게 대 놓고 물었습니다. 책 속에서 당신은 감사일기를 쓰라고 했는데, 지난주 당신의 유튜브에서는 그런 것은 사도 사이비라고 한다. 전혀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또한 당신이 말하는 방법들은 모호하다, 아름답다와 훌륭한 미모다 처럼 표현만 다를 뿐이지 동어반복이 아닌가. 대체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탐구하는 것인가?
그분의 이론은 간단합니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것을 '본성'의 자리에서 해야지 '자아'로서 하면 잘못된 것이다.(이것을 사도 사이비라고 칭함). 그러나 이 역시 반박했습니다. 우린 누구나 자아임을 인식한다. 내 안의 본성이 신이라고 가정한다면 스스로 신이라고 믿는 이가 과연 이 지구상에 얼마나 있을까? 아마 전 인류 역사에서 단 2명만이 그런 존재라고 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본성에서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 과정에서 그분은 당시 그 책을 썼을 시기와 그사이에 바뀐 개념, 원래 책을 쓴 목적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반박에 적절한 답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온전히 저 원칙을 고수하고 모든 방법에 대해서 개방적으로 진행해 나갔지만, 카페에서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죠.
오히려 자기 탐구를 제대로 실천하는 이들에게 해가 된다는 겁니다. 이상했습니다. 다리를 낫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적이라면 깁스를 하든 약을 바르던, 물리치료를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다리를 사용하지 마세요'라는 원칙만 고수하면 되는 것.
그러다 문득, 내가 왜 그 카페에 집착하는 것이지? 왜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지,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새로운 것은 없어. 그들은 여전히 내가 모르는 어떤 경험을 공유하지만 난 이해가 되지 않아.
'본성'이라는 것에 인식의 눈을 열어준 것만으로 나는 복성선생님에게 마지막 감사를 하고 집착을 버렸습니다. 사실상 그가 스승이 될 수 있다 믿었습니다. 여러 조건 상. 그러나 그분 역시 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시돼 다소 변명 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지금 설법하는 유튜브와 판매되는 책의 내용은 상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그의 자료 모두를 정리했습니다. 중복되는 것은 뭉치며 장르별로 구분했었죠. 그리고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카페의 글들은 저에게 성찰을 일으키기엔 부족했고, 오히려 마치 A.I처럼 올라오는 답변들
어쩌면 참담함이 뭔지 경험하지 못한, 일상의 고민, 고통의 경험들과 성찰에 제 자리가 아님을 느꼈죠. 운영진 역시 모든 사람이 이 방법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 해왔고. 모든 부분을 끊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과 지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붓다와 함께 이 분을 내 스승으로 삼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증명해 내었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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