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마음공부

반야심경 07. 파랑새는 바로 우리집에 있었어.

리뷰파파 리파 2024. 9. 5. 21:35

1. 정말 대단합니다!. 한번 읊어 보세요!

고지반야바라밀다(故知般若波羅蜜多)

시대신주(是大神呪) 시대명주(是大明呪)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 진실불허(眞實不虛)

고설반야바라밀다주(故說般若波羅蜜多呪) 즉설주왈(卽說呪曰)

 

이 대목은 솔직히 광고문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홈쇼핑 광고에 보면 성우분이 "OOO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 바로 주문하십시오 3만 9천9백 원!" 이렇게 이야기하시죠. 그러나 현장법사께서 그런 의도로 이 부분을 번역하신 것은 아니실 겁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반야심경이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후대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만을 구성했다고 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불경이라는 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를 통해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후대에도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남기신 것들도 있다고 하니 말이죠. 그런 불교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는 한참 모자라기에 섣부른 얘기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남긴 말들을 담은 것이 '아문경'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접해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불교는 그 당시 힌두문화가 우세이던 인도 땅에 새롭게 생긴 신흥종교였고, 사실상 지금도 종교라는 것은 점점 세력을 키워야만 하죠.

 

제 시선에서는 이 부분은 '반야심경'에 대한 대단함을 홍보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불경을 지으신 분의 입장이라면 이 만한 지리가 없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럼 해석을 일단 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다'의

아주 신비한 진언, 아주 밝은 진언, 가장 뛰어난 진언, 비교할 데 없는 진언으로

모든 괴로움을 없주나니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

고로~ 반야바라밀다의 진언을 즉시 설한다

 

어떤가요? 솔직히 처음 반야심경을  접하면서 이 해석 부분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불교 경전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몰랐으나 스님들이 암송하시는 것들을 들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마냥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그 양을 보면 이 정도면 충분히 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어디에 견주어도 이보다 나은 것이 없는 가장 뛰어나고, 밝고, 신비한 진언이라고 하잖습니까.

 

최근 어느 방송을 통해 들어보니 초기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것은 동남아, 특히 미얀마 같은 나라에 남아 있는 소승불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후 석가의 가르침에 대한 여러 해석과 각 지역의 생활여건에 맞추어 변형되어 여러 갈래로 나눠진 '부파불교'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대승불교'라는 것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상당히 힌두교적인 부분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홀로 부처가 된 석가모니보다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여러 중생을 돕기 위해 남아 있는 보리살타, 즉 깨달은 중생인 '보살'이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소승 불교처럼 자기만 깨달으면 되는 것이 아닌 세상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큰 뜻이 있으니 말입니다.

 

힌두교의 주요 경전 중에 하나인 '우파니샤드'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도 관련 서적이 몇 권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얘기 같은 신들의 이야기를 상상했었습니다. 다신교 하면 힌두교라고 연상될 만큼 신이 많으니, 얼마나 다채로운 신의 이야기가 나올까 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파니샤드에 있는 핵심적인 이야기도 지금의 불교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는 중생 모두가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중생으로서의 생각을 거두어 버리고 스스로 불성이 있음을 체험을 통한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하죠. 우파니샤드에도 브라흐만이라는 신 중의 신이 있습니다.

 

그 브라흐만이 자신의 조각을 사람들 마음속에 모두 넣었는데, 이것이 아트만입니다. 한자로는 我(나 아)로 해석을 하더라고요. 그러니 우리 모두 안에 불성이 있는 것이죠. 그 외에도 수행이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라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학교에서 배웠을 때 생각했던 '무속신앙'과는 차원이 다른 면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니, 그게 다는 아닐 겁니다. 어쨌거나 불교 역시 힌두교적인 영향을 받았던 석가에 의해 태어났고, 여기서 더 많은 것을 흡수한 것이 대승불교라고 하니 이 정도만 알아두시고, 그래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며 관세음보살을 그토록 많이 찾는구나~ 정도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이것이 핵심입니다.

자, 다 왔습니다. 이제 딱 한 구절 남았으며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의 핵심인 '진언'입니다.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해석은 '갔네 갔네/ 피안에 갔네/ 피안에 완전히 갔네/ 깨달음이여~' 이렇습니다. 이게 뭐야 싶죠? 이 역시 산스크리트어를 음역으로 한 것으로 아제아제의 원래 발음은 '가테가테..' 이런 식입니다. '아제'는 어디로 간다는 뜻인 것 같죠? 그런데 해석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피안'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피안은 대중적으로 말하면 '극락천국'입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깨달음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뭐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나를 깨달음에 이르게 해 줄 주문 같은 것을 기대했었는데... 이건 뭐랄까.. 좀 허탈한 느낌

 

그러다가 어느 해설서에서 이 부분을 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갔네 갔네 깨달음이 바로 여기 있네, 지금 바로 이곳이 피안이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방식이 좀 다르지만 원래 해석과 이 해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파랑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주인공인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름도 기억을 하고 있죠. 세부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파랑새를 찾아 떠난 두 남매는 온갖 고생을 하며 돌아다니다 결국 파랑새를 못 찾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집에 있던 새가 바로 '파랑새'였다는 것이죠. 저 역시 책으로도 보았으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어린 시절 '라디오 연속극'으로 들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의미하는 바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납니다. 깨달음도 그러하다는 것이죠. 이미 깨달음은 당신 안에 있다. 그저 그것을 발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로써 故 강수연 씨 주인공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어떤 뜻인지도 알게 되었죠.

 

이제 뜻풀이는 모두 마쳤습니다. 그런데 딱 1가지 의문은 아직도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구조를 보면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 세상 만물에 대한 실체에 대한 해설이며, 그러니 석가모니가 제시한 여러 가지 방편(방법들)들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처의 깨달음을 알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려주죠. 그리고 이보다 더 뛰어난 경이 없다. 그러니깐 지금 당장 외워보자라고 하며 '아제아제~' 이렇게 나옵니다.

 

진언 혹은 '만트라'라고 부르는 것은 해석을 하게 되면 그 뜻이 변질될 수 있으므로 있는 그대로 외우는 경전 구문입니다. 그럼 사실상 이 만트라만 외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앞에 나온 것들은 결국 전체적으로 '해설'에 가까운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오직 책과 영상 자료로 공부를 한 저로써는 그 해답을 아직 찾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만트라만 조용히 여러 번 암송할 때도 있고, 전체를 암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톨릭의 '주 기도문'을 외우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죠. 종교와 무관하셔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말은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칼날이 되기도 합니다. 의미 없을 때도 있고, 때로는 1000냥 빚을 갚기도 합니다. 그러니 말에는 분명 힘이 있고,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내려온 그 힘을 조금 얻어보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니 특별히 종교가 없으신 분이면 가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정도는 해보시는 게 어떠실까 추천드립니다.

 

자 이로서 모든 해설을 마칩니다.

3. 반야심경을 마치며

처음, 어떤 책이나 글을 가지고 글을 적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을 정리한 목록을 보면서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 다시 반야심경을 매일 암송하고 있었기에 시작을 했는데, 솔직히 길어도 3편 정도면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총균쇠'보다 더 긴 7편의 글로 마무리를 하게 되어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놓쳤던 부분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되짚게 되었고 글을 적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가 이 불경이 가진 더 깊은  가치를 알게 되었고, 더 배우게 된 계기였기도 합니다. 불교라는 종교 경전인지라 어떤 분들에게 거부감을 드리진 않았나 하는 걱정도 되지만,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불교 신자도 아닌 제가 반야심경을 암송하는 것은 요즘 흐려진 기억력을 훈련하려는 목적이며, 그러면서도 그 의미를 되짚으며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의 철학을 얻고자 함입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계기로 반야심경을 암송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암송하기 쉽게 문단을 끊었으며, 그저 영혼 없이 보시기보다 제대로 된 의미를 이해하시기 쉽게 노력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와닿았으면 좋겠네요.

 

이 글은 반야심경에 대한 여러 글들과 해석들을 토대로 제가 느낀 생각을 버물여 적었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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