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총알이 채워진 리볼버가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단출하면서도 복잡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앞 편에서도 설명드렸지만 영화의 해석을 위해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아도 무방하며, 오히려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4. 이스턴 프라미스 (동방의 약속)
사실상 '리볼버'의 목표물은 바로 '이스턴 프라미스'라는 회사입니다.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정상적인 회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고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곳이죠. 사실상, 이 영화 속 갈등의 모든 시작은 바로 이 회사의 이사였던 앤디(지창욱)에게 있습니다. 약속을 어긴 것이죠.
회사에서는 정상적으로 돈이 지급되었지만, 지창욱이 카지노에서 그 돈을 모두 날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황정미'라는 이름으로만 거론되는 중요 인물이 있습니다. 자 그럴려면 이스턴 프라미스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합니다.
아주 유명한 무당이 한명 있었습니다. 이름은 '임소정', 그녀가 바로 이스턴 프라미스의 대표였고, 검사 와이프들도 슬슬 기는 대단한 무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었죠. 그녀에게는 2명의 수양딸이 있었습니다. 황정미와 그레이스가 바로 그 둘입니다. 그레이스(전혜진 역)는 앤디의 누나이기도 합니다. 즉 둘은 무협지로 치면 사제이면서 상속의 경쟁자인 것이죠.
이름이 참 의미 심장하죠? 감독은 '약속'이란 부분을 아주 많이 강조합니다. 하수연이 정마담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마담은 이렇게 대답하죠. "약속이니까요". 의미심장하죠?
황정미는 하수영(전도연)이 받기로 했던 아파트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임석용이 3개월 전 황정미에게 상속을 한 것이죠.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는 다른 무당이 점집으로 현재 운영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수영은 민기현(정제영 역)이라는 은퇴한 선배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특이하게 민기현은 하수연에게 '리볼버'를 가져가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5. 약속만 지키면 되는데,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들까?
돈 받아내는 복수극의 형식일 뿐인데, 그 이면에 깔린 복잡한 사정들. 사실 주인공인 하수영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보시는 관객분들에게도 이게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논리적인 결정과 비논리적인 결정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황정미는 죽었습니다. 당연히 경쟁자인 그레이스에 의해서죠. 그렇게 그레이스는 '이스턴 프라미스'를 가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동생인 앤디는... 정말 미친개라는 표현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캘릭터입니다. 이 부분에서 앤디 역을 맞으신 지창욱 씨의 연기는 최고입니다.
앤디는 하수영에게 돌아갈 7억을 홀랑 날려먹었고, 돈 받으러 온 그녀에게 그 회사를 나온 지 오래되어서 상관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피가 섞인 침을 뱉은 술을 마시면 돈을 준다고 하죠. 하수영은 그 술을 마시지만, 앤디가 건네준 것은 '마약'입니다. 팔아서 알아서 하란 거죠. 그런 앤디를 하수영은 무적 삼단봉으로 쥐어패고 다리까지 부러트립니다.
오로지 하수영은 돈만 받으면 되지만,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죽은 황정미가 속초의 '화종사'라는 절에서 마지막으로 신을 모신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그레이스 역시 '본부장'을 통해 하수영과 앤디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알게 되죠. 앤디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하수영을 봐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부장은 조사장(조재훈, 정만식역)과 정마담을 불러 하수영을 감시하라고 합니다. 하수영과 본부장도 서로 만납니다. 어떻게든 돈을 받아야 하니까 말이죠. 본부장은 7억이 큰돈도 아니지만 적은 돈도 아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술 한잔 하자는 정마담, 하수영은 정마담에게 좀 멀리 갈 일이 있으니 적당히 마시라고 하죠. 그리고 하수영에게는 본부장이 조사장과 본부장한테 불려 갔다 온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무래도 당신을 죽이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말이죠. 그리고 손가락을 조금 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난 딱 요만큼만 언니 편이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돌아가는 길에 본부장, 조사장, 신동호 형사 모두에게 하수영이 내일 어디로 간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열심히 3 사람한테 전화를 돌리고는 씁쓸하니 "아. 더럽네"라고 말합니다.
6. 약속에 대한 3가지 자세
이 영화를 가만히 보면 우리들이 약속에 대하는 3가지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지킬 것은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안지키는 우리 대부분이 취하는 내 이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어기는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지키려는 일반인들의 모습이죠.
뭐, 이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런데 특이한 극단성의 두 인물이 있습니다. 먼저 '앤디', 이노무 자슥은 전~~ 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심지어 하수영을 제거하려고 부른 양아치들 한테도 "저 여자 못 잡으면 돈 못 받을 줄 알아"라는 식으로 말했다가, 오히려 욕을 쳐 먹고 꼬랑지를 내리며 "돈 준다고~"라고 할 정도죠.
그런 것에 비하면 정마담은 모~든 약속을 지킵니다. 하수영에게 했던 것도, 신형사에게도, 심지어 본부장이 시킨 일에도 절대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하수영은 그런 정마담을 대단하다고 칭찬하죠.
그럼 하수영은 어떤 인물일까요? 그녀는 약속을 지켰고, 상대도 약속을 지키길 바라는 쪽입니다. 약속이란 건 상대방의 믿음에 근거를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어길 수 있다는 의심도 항상 같이 존재합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의심들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하수영은 합리적 의심 속에서 상대의 약속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고, 삼단봉을 휘두릅니다.
인간의 관계에서 적인지 아군인지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수단이 바로 약속이죠. 그 지키는 정도와 어기는 정도에 따라 믿음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깨지는 가장 많은 요인들은 개개인의 욕심입니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에서 나온 '존 내쉬'는 '게임 이론'의 창시자입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두 명의 죄수가 있습니다. 그 둘을 분리시켜 놓고 이렇게 제안하는 것이죠.
네가 상대의 죄를 불면 너는 1년만 살게 해줄께.
하지만 너가 불지 않고 상대방이 불면 넌 10년 동안 감방에서 썩어야 할 거야.
하지만 아무도 불지 않으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결정이 최고인지 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과연 서로를 믿을 수 있을 까요? 아주 복잡한 계산이 돌아갑니다. '게임 이론'은 경제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게임이론에 기초하여 시뮬레이션 결과 최고의 결론은 '받는 데로 돌려준다'였습니다. 상대방이 배신하면 나도 배신하고,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면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죠. 이 부분을 하수영(전도연)은 제대로 보여줍니다.
7. 관계, 그 어쩔 수 없는 무언가
감독 오승욱 님은 '무뢰한'의 감독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좋은 평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아마도 전도연 씨와 그때 인연으로 이번 영화도 나온 것 같습니다. 특히 각본가로 유명하셨더라고요.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매우 뛰어나다 인정받는 영화의 각본가로 영화계에 입성을 하신 분입니다.
이번 리볼버 역시 각본과 감독을 같이 하셨더라구요. 정확히는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이 영화 리볼버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며 그것을 리볼버라는 무기와 약속을 통해 표현한 것 같습니다. 뭐 말하자면 서로 믿고 살게 약속을 잘 지키라는 것이죠.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 그렇게 약속을 어겼음에도 다시 한번 믿어보자는 마음을 갖는 관계들이 있죠
게임 이론으로 말하자면 비이성적 선택을 하는, 그 어쩔 수 없는 뭔가를 또 이 영화에서는 보여줍니다. 정마담이 하수영에게 보여준 약속은 단순히 이해관계뿐만이 아닙니다. 우린 그녀의 행동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위기에 처한 하수영을 도와준 정마담에게 신형사가 묻죠. "넌 뭐가 그렇게 하수영이 좋냐?" 그녀는 이렇게 말하죠
에브리띵
그렇죠. 누군가 좋아지는 마음. 꼭 남녀 사이가 아니라도 같이 있으면 좋은 친구, 선배.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신형사 역시 과거 하수영을 좋아했던 마음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 하수영을 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반격을 당하게 되죠. 그리고 향수 뿌린 미친개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문제를 일으키는 앤디.
그레이스의 입장에서 아무리 동생이며, 영화 내내 앤디가 문제만 일으킨다고 하면서도 부여잡는 이유. 바로 앤디가 그녀의 아들이기 때문이죠. 자갈밭에서 휠체어에 앉은 앤디를 정말 힘들게 끌고 가는 모습 속에서 그 어쩔 수 없는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8.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약속을 잘 지키자.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면 여러 부분에서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각 인물에서 느껴지던 어떤 이질감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껄끄러운 부분들도 해소가 되죠.
특히 하수영이 방파제 노점에서 소주를 한잔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마담은 차에 앉아 그런 그녀를 보고 있죠. 소주 한잔을 글라스로 들이키고 늙은 여주인은 생선 구이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하수영은 5만 원짜리 돈뭉치 하나를 상위에 올려놓죠. 그러나 노파는 무심한 듯 그중에 1장만 빼서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돌려줍니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 늙은 노파는 그것을 잘 아는 현자처럼 그렇게 소주를 한 잔 더 따라줍니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깊이를 알기에는 조금 불친절 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감독님은 이 아래 사진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민기현, 하수영, 임석영은 모두 함께한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화, 초심의 두 한자가 눈에 띄는군요. 그게 메세지겠죠?
이 글은 영화'리볼브'를 보고 제 나름의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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