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략한 줄거리
주인공은 '진주'라는 영화감독입니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이 있던 카페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촬영을 앞둔 순간, 그만 카페가 철거가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심지어 카페 주인은 촬영 약속을 했던 사실조차 잊고 있고 있었죠.
선배는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에게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며, 지방이라도 괜찮은 지 묻습니다. 그리하여 찾게 된 곳이 바로 경상남도의 서쪽의 중심지인 '진주' 였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던 것보다 진주는 촬영지에 적합해 보였습니다. 단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카페를 찾는데 애를 먹죠.
'주환'이라는 인물은 선배의 후배로 진주에서 미디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주를 돕습니다. 그러나 카페를 찾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헤메더니 진주에게 미안하다며 스스로 좀 찾으라며 떠나버리고, 그 이후로는 연락도 잘 되지 않습니다.
어찌 물어서 찾은 곳은 카페가 아닌 '다방'이었고, 그 곳은 진주의 맘에 쏙 들었습니다. 주인에게 촬영 협조를 요청했더니, 3일 뒤에 철거를 한답니다. 이 삼거리 다방은 지역 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였지만, 그것 만으로는 유지가 어려웠던 것이죠. 그리하여 진주의 극단의 연출자인 '준용', 미술가인 '시아', 음악가인 '도경', 연극인인 '정필'.. 이렇게 4명이 진주와 힘을 합쳐서 삼거리 다방을 지켜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핵심 줄거리입니다.
2. 진주의 재발견
지역명이 그대로 영화에 쓰인 경우들이 여럿 있습니다. '군산', '경주'.. 대부분은 상업영화라기 보단 독립 영화 쪽이 다수죠. '강릉'처럼 상업 영화도 가끔 있지만요. 저 개인적으로 이런 지역을 토대로 만든 영화, 드라마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은 MBC에서 만든 '환상의 커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엄청나게 인기도 있었고 배우 '한예슬'을 스타로 만든 드라마이기도 하죠.
저는 지금도 가끔 유튜브를 통해서 '환상의 커플' 편집본을 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놀라는 것은 정말 이 드라마 속의 촬영이 거의 '남해'에서 촬영되었다는 겁니다. 남해에서 다리만 타고 건너면 가는 삼천포, 그리고 남해에서 볼 때 주변에 가장 큰 도시인 '진주'등 내용과 촬영지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죠. 상업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더 보기 좋은 곳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 지역을 스토리의 배경으로 삼아도, 그 지역이 아닌 곳들이 장면으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환상의 커플" 덕분에 남해의 독일 마을은 한때 '장철수와 나상실'의 촬영지로 많은 인파들이 찾았다고 합니다. 진주의 진주 역시 이름 그대로 진주를 담아내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삼거리 다방'과 중앙시장, 그리고 진주하면 역시 대표적인 관광지인 진주성과 촉석루, 망경산의 봉수대까지, 아마도 극단과 같은 실내 촬영도 실제 진주의 극단을 통해 촬영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최근에 '진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한편 있었습니다. 바로 2022년에 KBS에 방송된 드라마 중 '징크스의 연인'입니다. 드라마 설정상 '진주'라는 공간이 거론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가 펼쳐지던 진주라는 공간은 실제와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진주를 베이스로 한 가상의 무대가 메인이었죠. 그에 반해 '진주의 진주'는 그런 가상의 무대를 만들기보다, 그냥 진주 자체를 배경으로 한 것뿐입니다.
진주에서도 자체적으로 '남강블루스'라는 웹드라마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배경이 드라마에 녹아드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진주를 두드러지게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스토리도, 그렇다고 진주라는 배경도 그리 각인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진주의 진주'는 보는 내내 가공되지 않은 진주를 배경으로 또 다른 영화가 나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 속 진주는 스토리 상, 삼각지 다방을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인지, 진주의 극히 부분적인 바운더리 내에서 촬영이 되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진주를 배경으로 한다면 여러 장르의 영화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더군요. 진주의 재발견이었습니다.
3. 새로운 것과 추억되는 것, 어떤 게 더 소중한 걸까?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사실 요즘에는 '다방'이라는 단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카페라는 단어를 굳이 한글로 번역하면 다방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죠. 또한 '다방'에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죠. 과거 다방레지라 불리던 아가씨들, 티켓이란 것을 빌미로 행해지던 성매매등도 비밀스럽지 않은 공공연한 것들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카페가 채워나갔습니다.
그러나 다방은 지금의 카페와 같은 역할을 했었죠. 그리고 그 역활 그대로를 유지한 곳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인 '삼거리 다방' 역시 그런 곳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철거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실제 영업을 하는 곳입니다. 아마 과거에 그곳은 많은 만남들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을 겁니다. 그 근처에는 영화처럼 실제 진주에서 활동하시는 극단도 있죠.
이 영화 속 예술인들은 그곳이 자신들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었고 무척이나 애착을 가진 장소로 나옵니다. 주인공 '진주' 역시 그런 추억을 담아내는 영화를 찍어야 했기에 필요한 장소였죠.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논리로 그들은 3일밖에 남지 않은 철거를 막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합니다.
과거의 문화유산들이 되살려지는 곳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가야 고분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진주에도 진주성 맞은편 한 블록이 전부 철거되고, 이제 '김시민 공원'이란 이름으로 건설의 막바지를 하고 있습니다.
극단 연출가로 나오는 '준용'은 오래전 극단으로 임대하던 곳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술이나 한잔하자며 간 단골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을 발견합니다. 개발 지역이 된 곳이죠. 아마도 감독님은 지금의 김시민 공원에 있었던 일을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
진주성의 맞은편이라 과거에는 그곳에 사격장과 같은 놀이 시설과, 많은 장어집들, 여관등이 있었죠. 하지만 몇 년 전 그곳은 모두 철거가 되었고, 이제 곧 새로운 공원이 보다 발전된 공간으로 문을 열게 될 겁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단기간에 성장한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50년대 독립 후 지른 내전으로 그나마도 초토화되어 지금은 저성장 국가들로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도 도움을 받을 만큼 못살았다고 하죠. 그런 우리가 한 때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을 만큼 성장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겠습니까.
80년대가 아마 가장 급성장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등 굵직굵직한 세계적 행사도 치렀었죠. 그 와중에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 추억할 수 있는 공간 중, 과연 제대로 남아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요?
마치 우리의 역사교과서처럼 근현대사는 조선시대보다 더 적은 분량을 차지하듯,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중장년층들의 청년 또는 유년 시절의 추억의 공간들은 대부분 철거가 되어 더 높은 건물이 올라섰거나, 역으로 과거의 조선시대를 복원하는 장소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새로운 곳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장소가 주는 추억들도 있습니다. 지역 행사 때마다 가끔 보이는 과거 교복 입기라거나, 잠깐 가상으로 만든 오래전 교실이 아닌 실제 현대사 속에서 추억하는 장소들도 충분히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 바로 '진주의 진주'가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며, 정말 한번 고민해 볼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4. 정말 아는 배우 하나 없는 독립영화
와~ 이토록 아는 얼굴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생소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연극 연출가 '준용'은 어디서 본 것도 같기도 하고 나름 배우 같은 느낌이 들었고, 확실히 어디선가 보긴 했지만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 미술가 '이시아'씨는 낯이 익어서 찾아보았습니다. 필모그래픽을 봐도 누구였는지 몰랐지만, 남편분이 '고창석'씨더군요. 얼굴을 보면 좀 강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친절하고 부드러우십니다. 다방 주인으로 나오시는 '오치훈'씨 역시 어디서 본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분을 착각한 거였습니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연기입니다. 그나마 가장 연기를 잘하시는 분이 고창석 씨 아내 분이신 '이시아'씨였고 주인공 '진주'로 나온 '이지현'씨는 열심히는 하지만 좀 어색한 부분이 있었으며, 다방 주인 '오치훈'씨는 역할상 그리 큰 비중은 없었으며, 연극 연출가 '임호준'씨는 꽁지머리까지 해 가시며 설정도 잘하셨고, 연기도 잘하신 듯하나,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분들은 그냥 아마추어를 섭외한 것인가 할 만큼 어색했습니다.
각본 역시, 초반까지는 예상외로 괜찮았으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옛날 스타일의 느낌이랄까. 다소 좀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희한하게 영화 '라디오 스타'가 좀 겹쳐진다고 할까.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5. 왠지, 홍상수 감독의 냄새가 난다.
전체적은 스타일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대표적인 게 좀 뜬금없는 인물과 인물의 연결 고리 같은 거랄까?
'홍상수' 감독을 모르는 분들도 많겠네요. 가장 마지막으로 이 양반 이름으로 올라왔던 건 아무래도 불륜 이슈겠죠. 바로 배우 '김민희'씨와의. 뭐,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정이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감독 홍상수는 저에게 있어서 그래도 괜찮은 영화감독입니다. '강원도의 힘' 이라던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작품은 꽤나 신선했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다만 이 분 영화 스타일이 어느 순간 다 비슷하다는 것(홍상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오는 남자들이 좀 찌질하다는 점, 그리고 뭔가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식상하다 못해 궁금해지지도 않게 되었다는 점.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우리나라 영화사에 의미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진주의 진주가 홍상수 감독의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결코 내용적인 면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홍감독님은 영화는 연애사가 꼭 들어가죠. 거기에 그 연애는 대부분 좀 적절치 않은 관계들이 다수죠. 그러나 '진주의 진주'에는 1%로도 남녀 간의 사랑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스토리의 축을 이루는 인물들의 '동기'와 '리액션'이 그런 냄새를 풍깁니다.
6. 진주에 사시거나, 진주를 추억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진주라는 도시가 서부경남을 대표하고는 있지만, 여러모로 발전을 많이 한 곳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과거 도심은 낙후되어가고 있고 오히려 새롭게 개발된 곳 위주로 발전이 되며 인구, 상권이 이동 중입니다. 영화의 주배경은 과거 구도심입니다. 물론 그곳들도 많이 바뀌었죠. 2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곳은 진주성 정도랄까. 앞서 적었듯, '진주의 진주'는 말장난 같은 제목이지만 영어 제목인 Jinju's pearl처럼 우리 주변에 보석 같은 진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진주를 진주에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별도 표기외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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