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미콤 보이의 일생

01. 뽀빠이 오락실의 꼬마녀석

리뷰파파 리파 2024. 10. 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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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전자 오락에 대한 첫 기억은 설악산 관광을 떠난 부모님과 함께 산장 휴게소 같은 곳에서 커다란 자동차 핸들이 달린 레이싱 게임이었습니다. 아주 각지고 단순한 자동차 모양이 핸들에 따라왔다 갔다 하며 다른 자동차들을 피하는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있던 기억

내 기억 속, 첫 전자오락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5jc9_xrD2_M

 

너무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 정확히 몇살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제가 가진 느낌은 촌동네 살던 꼬마가 에버랜드에서 신기한 놀이 시설을 보는 감정 같은 거였습니다.

 

그리고 '뽀빠이 오락실'로 기억은 순식간에 건너 뜁니다.

 

01. 엄마! 50원만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충무시의 문화 중심부였습니다. 극장이 하나 있었고, 우체국, 서점, 제과점, 그리고 뽀빠이 오락실. 스치듯 생각나는 여러 장면들이, 그중에서도 시간적으로 가장 최초의 기억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게임의 캐비닛의 그림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출처 : it조선(타이토 제공)

 

게임 화면보다 저 캐비닛에 있던 검은 괴물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아마 너무 어려서 전자오락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국민학교 1학년쯤이었을까요? 사실 그 시기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다만 저 이미지 만은 아주 선명하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저 게임이 게임 역사적으로도 한 획을 그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사실은 한참 세월이 흘러 '인터넷' 검색이 되었을 때나 알게 되었죠. 왜냐면 제 기억 속의 오락실 기계들은 한결 같이 합판으로 검정 아니면 붉은 단순한 케비넷이었거든요. 대충 아래 사진 같았죠. 사실 이 사진은 그보다 더 세련된 것입니다. 제목은 그냥 매직으로 주인아저씨가 적어두었던 것들이 다수였죠.

출처 : 번개장터

 

캐비닛이란 용어조차 어색합니다. 그냥 '오락기'라 불렀죠. 아무튼 정식 캐비닛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았다는 것은 아직 국내에서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기에, 일본에서 직수입되던 시절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화면에 셀로판지로 층층이 칼라를 다르게 붙여두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엄마! 50원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게임을 하려고 애를 쓴 게 언제부터였을까요? 여러분은 기억하시나요? 저는 확실한 건 한국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출세작 'E.T(이티)'가 대히트를 대도시에서 하고, 한참이 지나 지방 소도시에 상영하던 시절, 그 영화 보라고 엄마가 주신 돈을 뽀빠이 오락실에 모두 써버렸다는 겁니다.

 

오락실 입구에서 E.T를 보겠다고 길게 늘어서 있던 줄을 보며 갈등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영화의 장면들을 작은 엽서 형식으로 문방구에서 팔아서 아이들끼리 자랑하며 돌려보기도 했었습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최소한 스티커 사진은 아니었습니다. 접착력은 없었거든요.

그 중 인기 있던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이 기억을 토대로 한다면 텔레비전에 영화 광고가 나오고도 최소 1달에서 2달이 지나야 만 '충무'에서 볼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략적인 시기가 나옵니다. 그때 즈음이 주도적으로 전자 오락실을 들락거렸다고 추정 가능 하겠습니다.

 

아마도 처음 전자오락을 해본 것은 아빠에 의해서였을 겁니다. "이거 한번 해봐라, 우리 새끼~" 하며 동전 넣어주고 코 찔찔 흘리며 조이스틱(그 시절에는 조정기라고 불렀습니다)을 흔들며, 버튼을 눌렀다가 '쾅'하고는 GAME OVER가 떴겠죠. 그래서 케비넷의 괴물 말고는 그다지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선명한 것은 없습니다만, 그런 아빠의 따뜻함, 꼬마의 플레이를 보며 답답해하던 주변사람의 웅성임, 게임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얼른 동전을 넣고 저를 비켜 세우며, 게임을 시작하던 다른 사람에 대한 뿌옇게 퍼져있는 마음의 이미지가 있을 뿐.

 

02. 놀이에 돈이 필요 없던 시절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그 시절에는 노는 것에 특별한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돌멩이를 던지고, 흙을 파고, 가까운 산에 올라가 나무 작대기를 장난감 삼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때로 '피비'라고 부르는 갓 돋아난 풀을 뽑아 먹으면 달콤한 간식도 되었고, 같이 놀 또래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이렇게 말하면 언제든 재미난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 여기 놀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유년기, 그러니 정확히 학교란 곳을 들어가기 전, 제게 특별히 기억나는 장난감은 유일하게 친척집에 있던 곰 인형 밖에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곰 인형이었는데 포근하게 안고 있으면 너무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트럼프 카드가 생각납니다. 문향보다 킹이나, 퀸이 위, 아래로 같은 형상의 얼굴을 하고 있던 걸 신기해하던.

 

술래잡기, 숨바꼭질, 돌치기 그리고 그냥 동네 앞 공터에서 흙을 파고, 작대기로 줄을 긋고 신나게 뛰어놀다가 밥 먹으러 가던 기억들. 벽에 붙어 있던 '황금 박쥐; 포스터를 열심히 읽어대고, 동네에 누가 보고 왔다면 모두 함께 모여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시절. 어쩌다 극장에서 만화라도 보고 오면 다음날부터 주인공이 되어 동생과 놀았던 기억.

출처 : 컨슈머 타임즈

 

지금보다 더 자연이 가까왔으며, 덜 개발이 된 도시.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딱히 엄마가 밥을 늦게 해 줘서 배고팠던 것 말고는 굶주렸던 기억도 없습니다. 그저 부모님들에게 보리고개 이야기를 자주 들었을 뿐이죠. 아마도 아이였기에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걸 알리 없었을 겁니다. 돈이 뭔지도 몰랐던 것 같고, 가게에서 제가 직접 뭘 산 것 역시, 학교에 입학한 이후가 아닐까 합니다.

 

놀이에 돈이 필요해진 것은 아마도 '전자오락'이 등장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장난감보다는 싸고, 딱지치기보다는 훨씬 재미난 또 다른 세상. 돈 없이도 옆에서 구경만 해도 재미나던 '전자 오락실'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뽀빠이 오락실이 사라진 지는 한참도 더 되었고, 이젠 E.T를 상영했던 봉래극장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건 비단 제가 살던 충무시 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그 조그마한 도시에 그토록 많던 오락실을 요즘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PC 방의 등장으로 쇠퇴의 길을 걸은 전자오락실

 

이젠 그 PC방조차도 20세기말에 불었던 '스타 크래프트' 시절의 번성기에 비하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도 같이 않으면서도 한 개인으로 보면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때때로 그게 벌써 10년이나 되었어?라고 놀라는 일도 이젠 흔하죠.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는 느낌입니다. 누가 그렇게 표현했었죠. 세월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와 비례한다고. 그리고 그만큼의 현기증이 날 만큼 세상의 모든 면이 변하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3.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기억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1994년 당시 인기배우셨던 '독고영재'씨와 '최민수'씨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헐리웃 영화를 보며 자란 두 친구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최민수 씨가 만든 영화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던 중, 친구 독고영재 씨는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헐리웃 키드의 일생 중 한장면

 

그리고 최민수 씨의 영화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속에 나온 장면들과 대사들로 짜집기 된 표절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영화는 갈등의 최고조에 도달합니다. 심지어 영화를 만든 최민수씨 조차 결코 의도하지 않은, 말 그대로 헐리웃 영화를 보고 자랐기에 벌어졌던 아이들의 생애.

 

'에반게리온'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안노 히데야키 감독 역시 '이데온', '울트라맨'과 같은 기존 만화들과 비교되며 표절이란 단어가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젠, 그런 것을 그냥 오마주라고 표현하죠. 안노 감독 역시 이런 부분을 상당히 인정합니다. No Problem. 어디에서 장면을 가져왔다 한 들, 에반게리온은 최고의 만화중 하나입니다.

출처 : IT조선 김형원의 오덕이야기

 

창작문화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 결국 모방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누군가를 동경하고, 영향을 받고 그렇게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자기 만의 정체성'을 입혀 탄생하는 것이죠.

 

그러나 당시 이 영화 속 최민수 씨는 자신의 창작물이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라는 것에 스스로도 절망하며 좌절합니다. 친구인 독고영재는 그런 친구를 안타까워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인정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1994년 우리가 바라보는 문화의 시각이겠죠? 93년 김영삼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하던 군사정권도 막을 내렸고, 민주화를 주장하던 학생운동도 거의 느낄 수 없었지만, 아직은 뭔가 긴장되고 진지하던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던 시절..

과연 그들은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강타하던 '패러디'라는 장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 까요? 

 

 

전자오락으로 '돈'이라는 개념에 눈을 뜬 우리 시대의 친구들은 어떤 생애를 살고 있을까요? 그런 궁금함과 옛 영화 속의 제목과 내용이 떠올라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오락실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아마 주된 이야기는 '패미콤'이라는 게임기를 통해 벌어진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바로 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패권을 쥐게 했던 8비트 게임기지요.

 

단순한 추억 팔이는 아닐 겁니다. 어린 시절 가졌던 꿈, 그것을 이루었던 이야기, 절망했던 이야기, 포기했던 이야기, 버리지 못한 미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만들어 내는 후회에 대한 이야기들

 

누군가에게는 잊었던 것을 찾게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넘길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잘 사는 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패미콤 보이의 일생 시작합니다.

 

항상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 참고내용 --

 

**저도 이번 글을 쓰며 제가 처음으로 보았던 레이싱 게임의 참고 사진을 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시다 젠지'씨가 쓴 '나의 오락실 이야기'에서 2가지 레이싱 게임을 알게 되어 조사결과, 겨우 1974년에 일본 TAITO 사가 발매한 'SPEED RACER'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종스크롤 게임이라고 합니다.

 

** '피비'로 기억되는 어릴 적 먹던 달콤한 새싹은 '삐비'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띠풀'의 어린 새싹이랍니다. 동의보감에도 나와있어 피를 응고시키는 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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